<EBS 다큐 프라임 -- 상황 심리 프로젝트 인간의 두 얼굴>

-무엇이 우리를 두 얼굴로 만드는가?
방송일자: 8월 11일(월)13일(수) 밤 11시10분12시
연출 : 지식정보 정성욱

딜레마(Dilemma)
1.당신은 교실에 앉아 시험을 보고 있다. 교실 안에는 나 말고도 5명이 더 앉아 있다. 한참문제를 풀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매캐한 연기가 스며들어와 자욱하게 퍼진다. 연기를발견한 당신. 밖에서 불이라도 난 것일까? 놀란 표정으로 점점 짙어지는 연기와 주변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계속 시험지만 풀고 있다. 옆 사람에게 이상하지 않냐고 물어보았지만 어깨만 으쓱할 뿐 별 반응이 없다. 당신 앞에는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고 곧 시험 시간이 끝난다. 당신은 그냥 앉아서 문제를풀 것인가? 아니면, 혼자서 이 연기 나는 교실을 나갈 것인가?

2.시력검사를 받으러 안과에 갔다. 검사기에 눈을 대고 이것저것 묻던 의사가 갑자기 혀를 내밀어 코끝에 갖다 대고 눈동자를 굴려보라고 한다. 이상한 시력 측정법이다. 그런데 이번엔컵에 물을 담아 주더니 배꼽에 물을 열 번씩 바르라고 하고 신발을 벗어 들고 토끼뜀을 10번하라고 한다. 대체 이게 시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의사는 분명히 이 분야의 전문가로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당신이라면 의사에게 왜 이걸 해야 하느냐고 따져 물어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의사가 시키는 것을 따라할 것인가?

3.봄날 오후 한강시민공원에 나들이를 갔다. 혼자 책을 보고 있는데 옆 자리에 있던 사람이화장실에 간다. 그때 한 남자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옆 사람의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저 남자는 도둑일까? 아니면 가방 주인과 아는 사이일까? 아무리 봐도 수상쩍다. 이때 당신이라면 그 남자를 붙들고 왜 남의 가방을 가져가느냐고 물어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모르는 척 책을 볼 것인가?

4.일곱 사람이 회의실에 모여 앉아 있다. 칠판엔 세 가지 길이의 선이 그려져 있다. 팀장이들어와 막대기를 보여주며 이 막대기와 같은 길이의 선이 어떤 것이냐고 물어본다. 답은 두번째 선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앞에 앉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답은 첫 번째 선이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혹시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여기서 다른 답을 말하면 혼자만 이상한 취급을 받는 게 아닐까? 드디어 마지막으로 내가 대답할 차례가 왔다. 당신은 정답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답하는 대로 그냥 묻어갈 것인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니?” - 그러나 인간은 상황에 지배당한다

이 네 가지 딜레마는 취재진이 했던 실험들 중 일부다. 실험 결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될 것이다. 미리 힌트를 말한다면, 인간은 개인이 가진 됨됨이나 성격보다는, 어떤 상황에처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나쁜 일을 저지르거나 바보처럼 구는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니?”라고들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행동의 원인을 그 사람 개인의 특성이나 기질적인 성향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걔는 원래 사람이 그래” 또는 “그 사람 좀 이상하다” 라는 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그때 그 장소에서 일어난 상황에 의해 지배당한다. ‘나는 절대 안그래’ 라는 말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말이다. 상황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오히려 상황의 힘에 휩쓸리는 것이야말로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1963년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했던 전기충격 실험이 대표적이다. 나찌의 유태인학살을 목격한 밀그램은 ‘어떻게 인간이 그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가 심리학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충격적인 실험을 하게 된다. 기억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속이고 사람들을 모집한 후 학생이 답을 틀릴 때마다 치명적인 전기충격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과연 몇%나 되는 사람들이 이 명령에 따랐을까? 65%가 상대편이 죽을 수도 있는 정도의 높은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권위있는 연구자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버튼을 누른 것이다. 여러분이라면 연구자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 같은가? 하지만 그 상황 속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내가 몇 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가할 지 알 수 없다.

이마에 E자를 써보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늘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고 매순간 선택의 경계선에서 자신도모르는 사이, 상황에 휩쓸리게 된다. 과연 나는 주변 상황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일까? 당신의 이마에 대문자로 알파벳 E자를 써보기 바란다. E자를 쓰는 방법에 따라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E자를 상대방이 잘 읽을 수 있도록, 즉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는 거꾸로인 모양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E자를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E자 실험은 일본의 사회심리학자가 했던 실험으로 인간의 자의식을알아보는 실험이다. E자를 상대방이 잘 읽을 수 있도록 쓰는 사람들을 공적 자의식이 높은사람으로 자신의 주관보다는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만큼 주변 상황에 휩쓸리기도 쉽다는 의미다. 취재진이 E자 쓰기 실험을 해본 결과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70%가 남들의 시선에 맞춰 E자를 썼다. 우리들 대부분은 남의 눈치를 보며 상황에 따라 적당히 묻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다. 당신은 아닌가?

인간이 센가? 상황이 센가? -인간과 상황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렇게 상황의 힘은 우리가 삶 속에서 매일 경험하는 진리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고싶지 않을 뿐이다. 모두들 나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원칙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격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황의 힘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인간이센가? 상황의 힘이 센가? 그 답은 ‘둘 다’ 이다. 인간과 상황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나라는 인간이 타인에게는 상황이 되고 또한 타인의 행동이 나에게는 상황으로 작용한다. 상황속에 이미 인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상황의 힘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의 힘을 아는 사람은 잘못된 상황에 휩쓸리지 않도록 스스로 경각심을 가진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의 힘을 역이용하는 지혜다. 상황의 힘이 얼마나강한지 알게 되면 상황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은 상황에지배당한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상황을 움직이고 바꿀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이제 인간이 상황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두 얼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상황심리프로젝트 인간의 두 얼굴. 1부 상황의 힘은 상황에 지배당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상황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인정함으로써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제공한다. 2부 사소한 것의 기적은 인간이 상황을 지배하고 상황을 바꾸는 이야기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상황을 바꿔라. 상황을 바꾸는 것은 지옥을 천당으로 바꾸는 것처럼 엄청난 일이 아니다. 무단 쓰레기 투척으로 골치를 앓는 한 골목. 그곳에 양심거울을 설치하고 벌금 경고문을 써 붙이지만 무단 쓰레기는 계속 넘쳐난다. 이때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쓰레기 투척 장소에 작고 예쁜 화단을 만들었다. 24시간관찰 결과,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쓰레기를 들고 나왔던 한주민은 쓰레기를 버리려다가 다시 주워들고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사소한 것이 상황을 바꿔내는 기적이다. 너무 사소한가? 상황을 바꾸는 터닝포인트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사소한것에서 시작된다. 3부 평범한 영웅에서는 바로 이 사소한 기적을 이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위기의 순간, 지하철에 떨어진 사람을 구해낸 의인들. 그들은 불과 몇 초밖에 되지 않는아주 짧은 순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그 상황 속에 뛰어들어 상황을 바꿔낸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의 힘에 의해 악이 퍼져 나가듯, 선도 퍼져나간다는 사실이다. 일본 지하철 영웅 이수현은 일본 사회에 이수현 효과를 남겼다. 이수현의 고귀한 희생 이후, 이수현을 따라하는 지하철 의인들이 늘어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취재진은 이 선행 전염효과를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하기 전 날, 한교실에서는 타인을 도와주는 사람들에 관한 비디오를 보여주고 한 교실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모금 결과, 비디오를 봤던 교실과 그렇지 않은 교실의 모금액은 7배가차이가 났다. 이렇게 우리는 상황의 힘을 이용해 역으로 선행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도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2003년 대구지하철화재참사, 2007년 버지니아텍 조승희 사건,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군대 및 체대생들의 폭력사태, 교실 왕따 등을 상황 심리로 접근함으로써 인간 개개인의 윤리에만 호소해왔던 기존의 방식을 뒤집고 인간 행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틀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인간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틀을 연구, 관찰카메라를 이용해 특정 상황에 빠진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노력했다.실험의 진짜 목적을 모른 채 15가지 인간 행동 실험에 참여하고, 이후 실험 내용의 방송을허락해 준 450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다.

“당신이 만든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바꾸게 할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외 12명의 사회 심리학자들이 함께 했다. 특히 필립 짐바르도(스탠포드대), 빕 라타네(콜롬비아대), 알란 엘른(UC데이비스대), 조지 켈링(범죄학자), 스콧휴텔(듀크대)과 같은 미국내 저명한 사회 심리학자들은 취재진이 준비해 간 실험 영상을 하나하나 지켜보며 각각의 실험을 분석했다. 특히 스탠포드 감옥 실험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심리학자필립 짐바르도는 취재진의 실험 영상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자료 교류를 요청하기도 했다.“당신이 만든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을 바꾸게 할 것입니다” 뉴욕 제노비스 사건을 연구했던빕 라타네가 취재진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숫자 ‘3’의 법칙
거리 한복판에서 갑자기 뭔가 나타난 듯 하늘을 올려다보라.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 명을 더 구해 두 명이서 멀쩡한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들은 힐긋 쳐다보기만 할 뿐 여전히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한명 두 명에 이어, 이제 세 명이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때 마치 자석에 끌리듯 수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다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것은 강남역 사거리에서 취재진이 직접 실행한 하늘 올려다보기 실험의 결과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1명일 때, 2명일 때는 군중의 반응에 큰 차이가 없지만 3명이 되면 갑자기 동조하는 비율이 급증한다. 이것이 바로 숫자 3의 법칙이다. 한 명이 저항을 하면 왕따가 되고, 두 명이저항을 하면 이상한 사람들로 여기지만, 세 명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 상황을바꾸고 싶다면 뜻을 같이 하는 세 사람을 모아라. 숫자 3의 법칙을 알면 당신도 상황의 힘을 이용해 상황을 바꿔내는 평범한 영웅이 될 수 있다.


참고 실험>
방관자 효과 실험 (1968, 빕 라타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으로 ‘구경꾼효과’라고도 한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는 이론. 지켜보는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인데, 이렇듯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리켜 심리학 용어로 '책임분산'이라고 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1963, 밀그램)
1963년 밀그램은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자신의 '복종 실험' 결과를 발표한다. 이후 그는 실험의 비윤리성으로 미국 정신분석학회로부터 한 해 동안 자격 정지를 당했다. 10년 뒤인 1974년에 '권위에의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이라는 책을 출간하였고 그의 실험은 이후 여러 심리 실험의 원형이 되었다.

뉴욕 제노비스 사건(1964)
미국 뉴욕에 사는 20대 여성 키티 제노비스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다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정신이상자에게 35분 동안 칼에 찔리는 참변을 당했다. 제노비스는 35분 동안 비명을질렀고 이 현장을 자기 집 창가에서 지켜본 사람은 모두 38명. 그러나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았다. 누군가 전화기를 집어 들기만 했어도 그녀는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들은 모두 방관자가 되었을까? 이 사건은 목격자가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고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어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준 사례로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불리게 되었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1971, 짐바르도)
짐바르도는 모의 교도소를 만들고 학생들을 교도관과 죄수로 나누어 2주간 생활하게 하면서 그들의 심리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러나 예정된 2주의 실험은 6일만에 중단, 이 실험이 학계에 보고되면서 학계는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인간의 선과 악은 개개인의 기질 때문이 아니라,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으로 후에 짐바르도는 이를 ‘루시퍼 효과’라고 명명하였다.

동조실험(1955, 애쉬)동조(conformity). 
복종하라는 외부의 압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영향을 받아 행동상의 변화를 나타내는 현상을 뜻한다. 애쉬는 인간은 타인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으며 얼마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연구로서 동조실험을 하였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따를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

하늘 올려다보기 실험(1969, 밀그램)
뉴욕 시에서 행해진 것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즉 동조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주변에서 동조하는 정도도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다.

연기 실험(1969, 달리와 라타네) 
구멍이 뚫린 방 안에 연기를 넣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의 반응을 살펴본 실험. 여러 사람과함께 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연기에 휩싸인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인간은 대열을 무너뜨리느니 차라리 목숨을 내놓는 존재라는 것, 생존보다 사회적 예절을 더 중시한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



출처 ebs 다큐프라임 

http://home.ebs.co.kr/docupr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