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세 가지 착각

프롤로그

 

내가 주식에 처음 손 댄 것이 2004년이니까 올해로 6년차 개미다. 구력도, 스텟도 참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주식을 하고 있다는 건 최소한 망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는, '대박'을 꿈꾸며 우르르 몰려들었던 무수한 개미들이 '쪽박'을 차고 사라져간 지난 6년을 되돌아보면서 (그 개미들 중엔 내 친구도 몇 마리 있다) '선방'이라 자평하곤 한다. 심지어,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돈을 땄다. 주식이라는, 이 세상에서 제일 난폭한 도박을 배우기 위한 '수업료'를 치르고도 돈이 남았다는 거, 이거 쉬운 일 아니다. 그래서, 지난 6년간 내가 적용한 나름대로의 원칙과 노하우가 최소한 잃지는 않게끔 해 준 것이려니 혼자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고수들이 이런 나를 보면 코웃음 치겠지만, 이런 원칙이나 그에 대한 믿음 하나 없이 주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똥철학 하나 없이 주식을 하느니 (그 금액이 아무리 적다 해도) 그 돈으로 로또복권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킨다는 원칙 몇 개? 솔직히 다 별 거 아니다.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그런 시시껄렁한 것들이다. 그런데 딱 하나, 좀 독특한 '대원칙'이 하나 있다. '주식'이라는 걸 처음 접했을 때, 내 본능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그냥 '탁' 알았다. 그것은, '주식은 도박이다'라는 것이다.

 

 

1.개미들의 첫번째 착각 - 난 투자를 하는거야!

 

난 포커(poker)게임을 아주 좋아하고, 또 잘 따는 편이다. 어차피 상대라봤자 내 친구들이지만, 승률이 7할에서 8할 정도 되는 듯 싶다. 좀처럼 잃지 않고, 잃어도 적게 잃는다. 내 승률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내 친구들보다 포커를 잘 치기 때문이다.

 

'패만 잘 뜨면 이기는 거지 실력이 어딨어~'

 

이렇게 말하는 애들이 돈을 잃는다. 내가 친구들에게 늘 얘기한다. 포커에 '실력'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사이즈가 한 단계 올라간다고. 그 다음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노름판에 같이 앉는 사람들보다 하나라도 더 알아야 돈을 딸 확률이 높아진다. 도박판에서의 이 '실력차'는 '끗발'보다 훨씬 중요한 팩터다. 운은, 그 날 그 날에 따라 큰 기복이 있지만 이 실력은 기복이란 것이 아예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도박판의 돈은 결국 '실력'이 있는 사람이 따게 돼 있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나보다 돈까지 더 많다면, 그 사람의 돈은 절대 딸 수 없다. 이건 지구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다.

 

그런데, 주식은 -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도박 중에도 상도박이다. 그러나 개미들은 자신들이 '투자'를 하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는다. 이것이 개미들의 첫번째 착각이자 주식의 탄생과 역사를 같이 하는 아주 유서 깊은 착각이다. 이 착각 덕분에 증권사들이, 그리고 세력들이 돈을 번다. 

 

이제부터, 한시도 잊지 말기 바란다. 그 어떤 주식이 되었건 당신이 그걸 매입하는 순간,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하고 난폭하며 불리한 도박판에 발을 들인 것이란 사실을.

 

2.두번째 착각 - 실력을 갖추면 이길 수 있을거야! 

 

'주식이 도박이라구? 도박은 실력자들이 따는 거라고 그랬겠다? 그렇다면, 내가 실력만 갖추면 돈을 딸 수 있는 거 아니야!'

 

이것이 개미들의 두번째 착각. 이 '실력'을 '테크닉'과 혼동한 나머지 기술적 분석이나 경제계의 동향 파악에 갖은 애를 쓴다. 그 결과, 전문가들 뺨치는 솜씨로 각종 지표나 지수를 분석해내는 개미들도 다수 탄생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들 모두가 성공하진 못 한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는 게 병이라고, 오히려 더 크게 다쳤을 확률도 높다. 주식판에서의 진정한 실력은, 챠트를 얼마나 잘 해석해내느냐가 아니라 - '얼마나 큰 돈을 움직일 수 있느냐'와 '얼마나 좋은 정보를 선점할 수 있느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분석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돈과 정보력이 없다면, 그는 한낱 개미일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실력자들의 의도가 그의 기술적 분석에 반하는 것일 때, 그는 다칠 수 밖에 없다.

 

'무슨 소리야! 슈퍼개미라고 못 들어봤어? 기관, 외인들을 농락하듯 큰 돈을 버는 개미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뭘 잘 모르고 하는 소린데, 그 앞에 '슈퍼'가 붙는 순간 그들은 이미 개미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실력자다. 우리처럼, 신문의 경제면이나 와우TV의 추천종목 코너나 보면서 대출 받은 돈 700만원을 굴리는 게 아니란 얘기다. 돈으로 정보를 샀거나, 정보로 돈을 산 거다. 아니면 애초에 둘 다 있었거나.

 

좋은 정보, 혹은 큰 돈이 없다면 죽을 때까지 개미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사실부터 딱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주식시장의 개미는 도박판에서의 호구요, 먹이사슬에서의 최하위 공급자다. 실력자들은 다른 실력자들과의 한 판 승부를 원하지 않는다. 따기 쉬운 개미들의 돈이, 하루에도 몇천억원씩 주식판에서 돌고 도는데! 따기 쉬운 개미들의 돈. 돈도, 정보도 없는 이들의 돈. 바로... 당신의 돈.

 

3.세번째 착각 - 주식은 제로썸이 아니잖아!

 

'이 봐, 자네는 지금 큰 오류를 범하고 있어. 주식시장은 도박판과는 달리 제로썸이 아니란 말이지! 자넨 지금 그 점을 간과하고 있어. 주식의 가치가 올라가면, 투자자 모두가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구조라는 걸 몰라? 그게 주식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지!'

 

이것이 개미들의 세번째 착각이다. 주식은, 그 애초의 취지와 매커니즘과는 정반대로 - 이 세상 그 어떤 도박보다 잔인한 제로썸 게임이다. 딴 놈이 있으면 잃은 놈이 기필코 있어야 한다. 도박은, 만원 딴 놈 있으면 만원 잃은 놈이 있는 '신사적인' 제로썸이지만, 주식은, 어떤 놈 만원 따게 해 주려고 어떤 놈은 천만원을 잃어야 하는, 참으로 잔인하고 난폭한 제로썸이다. 주가지수의 의미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중얼거려봤자 소용이 없다. 

 

나도 주가지수가 뭘 뜻하는지 정도는 안다. 주가지수 1000은 1000배의 가치상승을 의미하는 거라고 했다. 처음부터 주식을 한 사람이라면 이론상 지금 모두 1000배의 수익을 내고 있어야 한다는 얘긴데, 과연 그럴까?

 

코스피가 다시 2000포인트를 탈환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지금 상장된 모든 회사의 주식을 한주씩만 매입해 놓으면 된다. 코스피 지수가 2000이 되는 날, 투자한 금액이 정확하게 두 배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주식, 정말 별 거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주식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주가지수는 그 자리에서 멈출 것이라는 걸. 야속하지만 코스피지수 2000은 지구 멸망의 그 날까지 오지 않는다. 코스피지수가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돈을 따고, 누군가는 돈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잔인한 사이클의 무수한 반복이 있어야만 지수는 움직인다. 

 

이 점을 이해했다면 이제 누가 잃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이 역할은 개미들이 도맡아왔다. 주식이라는 것이 생긴 이래,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에필로그

 

'뭐야? 개미들은 주식 아예 하지 말란 얘기냐?'

 

바로 맞혔다. 당신이 개미라면, 주식을 하면 안 된다. 당신보다 센 놈들이 눈을 번득이며 당신의 돈을 노리는 곳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리하고 난폭한 도박판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노름판에 제 발로 뛰어들 일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도 해야한다면, 꼭 해야겠다면, 말 그대로 도박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로또의 당첨을 바라는 마음으로, 카지노의 슬롯머신이나 룰렛을 하는 마음으로, 초등학교 때 학교 앞 문방구의 뽑기를 뽑는 그 마음으로, '잃어도 괜찮은 돈'으로 해야 한다. '잃을 확률이 훨씬 높지만, 잃어봤자 아주 큰 돈도 아니고, 혹시 운 좋게 맞으면 아주 기쁘고 즐거울거야!'라는 도박 본연의 마음, 그 마음으로 해야 한다.

 

단! 대충하지는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 보고 하자.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고, 책도 읽고, 고수들의 노하우도 찾아 보고. 그렇게, 최선을 다 해서, 혼신의 힘을 다 해서 신중하게, 신중하게 최선의 종목을 결정하자. 그리고 그렇게 매입한 종목이 오르면, 그 행운(엄청난 행운이 아닌가. 당신보다 실력도 좋고, 돈도 많고, 좋은 정보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돈을 땄으니!)에 크게 감사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 주식을 현금으로 바꾸면 된다. '잃어도 괜찮은 돈'을 가지고 즐기는 마음으로 하다가, 최대한 신중하게 선택한 그 종목이 오르는 행운을 만나게 될 때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의 실력이 아니라 행운에 의해서 돈을 따게 된 것이다 - 비로소 당신은 주식으로 돈을 따는 극소수의 개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개미들의 주식이다.     

 

공격적인 재테크의 수단? 화끈한 재산증식의 방편? 딱 얘기하는데, 그건 개미들이 주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당신이 개미가 아니라면 - 즉, 큰 돈과 좋은 정보가 있다면 - 당시는 만사 제치고 주식을 해야 한다. 가장 빠르고 가장 크게 이길 수 있는 곳이니까. 게다가, 무수히 많은 개미들이 '빠르고 크게 이기려는 욕심'에 자신들의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는 곳이니까.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 볼 차례다. 

 

"나는 개미인가, 아닌가."

 

P.S. - 오늘 새벽, 미국증시가 폭등했고 덕분에 한국증시는 연중 처음으로 1200포인트를 돌파했다. 투자자들을 잔뜩 움츠리게 했던 미네르바의 '3월위기설'은 증권가에 늘 떠도는 부질없는 가담항설이 되어버린 눈치다. 모두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턴 어라운드의 시작일까?

 

요 몇 달간의 상황을 두고 이런 말들을 한다. 'IMF때에는 지점에 불 난 거고, 이번은 본점에 불 난 거'라고. 맞는 말이다. 본점에 불 났다. 그것도 유례없는 큰 불이다. 다행히 오바마라는 소방차가 와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불길이 살짝 수그러드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꺼질 것도 같다. 좋다. 꺼진다 치자. 그러나 그 화재의 피해를 누군가는 입어야 한다. 어떻게든 그 댓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그 댓가를 치르지 않았다. 심지어 그 불은,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꺼지지 않으면, 전 세계로 옮겨 붙을 불인데.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인데.

 

[출처: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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