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6개월 간 글로벌증시의 중기적 전망

'


쟈끄리느입니다.
오늘은 향후 6개월 간 글로벌 증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인가에 대해 사색의 시간을 갖을까 합니다.
쓸데없이 길어진 장문의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글, 그저 쉬엄쉬엄 산책하는 기분으로 정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 길어서 못 읽겠으면, 큰 줄기를 섹션별로 연결했으니 단락을 떼어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될 것.

 

덧붙여, 부탁 하나 드릴까 합니다.
앞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경어체를 쓰지 않을 생각인데.
경어체의 사용이 지면활용에 비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격식의 다망함이 어울리지 않아서이니.
애독자 제위 여러분 모쪼록 살피셔서 깊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식물도 자살을 결심한다 - 신자유주의, 자살로 막을 내리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은 하나도 없다. 다만 움직임이 동물에 비해 너무 느려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식물은 빛을 향해 줄기를 뻗고, 머리를 짓누르는 큰 나무 가지를 피해 옆으로 휘고, 중력을 따라 뿌리가 땅속으로 박힌다.
이런 단순 움직임 말고도 판단하고 적응하기 위해 고급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지구 중심으로 뻗던 뿌리도 가물면 수분이 있는 위쪽으로 뻗고, 덩굴식물은 먼 곳에 기둥이 될 나무를 찾아 그 쪽으로 새순을 뻗는다.
해바라기는 해 없는 밤동안에 서쪽에 가 있는 얼굴을 동쪽으로 돌려 놓으며, 미모사는 잎을 재빨리 오므려 해충이 놀라 떨어지게 한다.
파리지옥은 20초안에 덫안의 가시를 두번 이상 건드려야 지옥문을 닫는 작전을 구사해 바람에 휘날리는 가랑잎과 모래에 속지 않는다.
사과나무는 생육기에 가뭄을 만나면 ‘애브시스산’이라는 생장조절 물질을 만들어 소모기관을 떨궈내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한다.

 

이와같이 정교한 감수성과 지능을 지닌 식물은 척박한 환경에서 종족보존을 위한 자살을 결심한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해충, 병원균으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을 때, 한마디로 살기 힘든 조건이 지속되면 자살을 감행한다.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는 주인의 정성어린 손길에 때 이른 꽃을 피우는 데 이는 사실상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때문이다.
꽃을 피운다는 건 자기 대의 생명을 끝낸다는 의미이므로 화초는 꽃을 빨리 피워 씨를 남기고 얼른 죽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채워지면 비우고 비우면 채워지는 것 또한 자연의 섭리.
이번 금융위기 또한 금융공학이 비대해진 버블의 팽창을 못 이겨 자살을 결행한 것이다.
레버리지의 확대재생산이 궁극인 금융공학의 자폭은 완벽한 시장자유주의를 추구한 신자유주의가 그려낸 인간소외의 작품이다.
일찌기 막스베버는 자연을 정복할 대상으로 여긴 인간들이 자연을 정복/가공하는 과정에서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분인 점을 간과한 채, 

마침내 인간 자신이 스스로를 가공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명쾌한 통찰로 현대물질테크노라시의 실체를 간파했다.
자본의 팜므파탈에 넋을 앗긴 현대인의 영적인 뇌는 석고처럼 굳어지고, 좌측뇌는 더 정교한 계산식을 위해 더 많은 톱니들을 장착했다.

더 많은 탐욕을 위해 휴머니티의 장신구를 벗어버린 분석능력의 진화는 파우스트의 팜므파탈에 바쳐졌다.
그리고, 그 댓가는 언제나 불황의 늪이었다.

 

시장의 자율을 철저히 숭배한 신자유주의에서 탐욕에 근거한 인간의 합법적 모럴헤저드는 전방위적으로 자행됐다.
모기지발 금융위기는 합법의 가면을 쓴 파우스트의 덫에 희생된 아비규환의 출구였을 뿐.
금융공학의 버블에 딱성냥을 그은 것은 차면 흘러넘치는 자연의 순리였다.
저 종족보존을 위한 꽃나무처럼 스스로 자살을 감행한 것.

 

버블의 수습은 또다른 버블의 시작 
어떻든, 금융공학의 팜므파탈을 수습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케인즈였다.
금융버블을 잡기 위한 결과적인 공공부채 창출 또한 초록동색의 금융버블에 다름 아닌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칸 태울 수 있는 일. 케인즈식 해결방법은 취할 수 있는 최악의 것들 중 최선의 선택이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자신의 주장대로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는 것을 보고 흐믓해 했을까?
예컨데, 얼빠진 모럴헤저드에 오히려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일자리 창출보다는 부실채권 구입 및 부실은행 구제에 거액의 자금을 썼는데, 영국·일본·중국 등 페미리와 의견 조율을
하지 않은 채 돈 잔치를 벌이며 교언영색의 치부를 드러냈다.
재정적자를 확대재생산 하는 역설의 아이러니로 성장을 구가해 온 미국의 백그라운드는 기축통화로서의 공고한 달러 헤게모니였다.
미 정부는 케인즈를 무덤에서 꺼내 오면서 그가 평소 메모한 정부역할론의 모럴헤저드에 대한 경고가 적힌 수첩은 꺼내 오지 않았는데
사실상 미 정부는 정부역할론의 모럴헤저드의 법전에 선서를 할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다.

 

현단계 미국을 위시한 글로벌 경제는 저 모럴헤저드의 암초를 묻어둔 채 항해 중이다.
지구촌 공히 금융위기의 종언을 선언하고 실물의 전반적인 데이터들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속속 회복되고 있다.
금융, 실물, 심리 모두 하향 안정세를 다지고 바야흐로 상승무드의 순풍을 이어가고 있는 현재 표면상의 암초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 모럴헤저드의 암초는 향후 글로벌 시장의 발목을 고비때마다 잡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우선 리먼의 파산 1주년을 맞는 요즘 위기의 진원지인 월가에서 저 모럴헤저드의 악령이 되살아 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월가의 전체 연봉총액은 금융위기 전의 그것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위기의 타격으로 전체 금융 종사원은 줄었음을
감안할때 오히려 개인의 임금이 금융위기 전보다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죽었소 엎드려 있던 저 팜므파탈의 악령이 너무도 빠르게 되살아 난 것이다.
정작 문제는 위기에 근신해야 하는 특정집단의 모럴헤저드가 아니라 최근 미온적인 입장으로 돌변한 미정부의 태도이다. 
곧 숨이 멎어 정신줄을 놓을 것 같던 절대절명의 참혹한 과거는 이미 잊은지 오래일까.
FRB의 달러 헤게모니 사수를 위한 뻔뻔함은 이미 도를 넘어 오히려 금융제국주의 미국의 패권을 되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초창기 위기국면에서 제발저림의 눈치보기로 윤전기를 돌려 푸른 지폐를 찍어냈던 겸손함은 사라진지 오래다.

 

최근 미 국채 매입에 암묵적인 거래를 실어 호의적이었던 중국의 반발과, 달러의 헤게모니의 절하의 움직임을 보이는 유로존의

이유있는 어필은 저 케인즈의 정부역할론에 동반된 모럴헤저드의 수첩을 꺼내든 것에 다름아니다.
저들이 현재로써 미국의 횡포에 맞설 유일한 수단은 미국의 대규모 국채를 계속 사줄지에 대한 저울질의 뻔한 협박이 전부이다.
예컨데, 향후 지구촌 경제 순항의 걸림돌은 대폭 늘어난 전지구적인 통화량(공공부채)이 가져 올 부작용이 아니라,  

써프페미리 간 혹은 써프페미리와  이머징 간의 자국이익을 담보한 치열한 신경전 일 것이다.
결국 미국의 우격다짐으로 끝날 뻔한 신경전.

 

2009년 하반기 ~ 2010년 상반기 글로벌 증시의 중기적 전망
버블을 수습하기 위해 또다른 버블을 만드는 것은 변이와 진화에 능한 자본주의의 전매특허이다.
전지구촌이 3Q를 지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금융위기의 종언을 선언한 것은 또다른 버블의 공식적인 출범을 알리는 시그널인 것.
지구촌은 기축통화로써 달러 헤게모니의 재 임용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미증유의 혼란을 싫어해서였다.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미국은 선제적이며 노련한 솜씨로 사실상 형만한 아우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써프, 이머징 할것없이 모두들 미국의 범법을 감싸안는 스톡홀름신드롬을 연출했는데.


미증유로 늘어난 공공부채의 엄청난 팽창은 말할나위 없이 지구촌 모두가 겪어야 할 향후 현실적 후유증 일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사실에 이의를 달지 않으며, 아무도 닥쳐 올 저 현실을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저 낙관적 일 수 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또 매양 비관적일 수만은 없는 이유이기도 한 리세션의 악몽.
분명한 것은, 만약 저 현실적인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다면 지구촌 경제는 회복 불능으로 빠질 것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단계 지구촌 경제회복 재건축 현장의 중심에 서 있는 메이저는 미국이다.
지구촌의 온 신경은 양적팽창이 가져 온 디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의 특이한 현상 사이에서 시소게임에 이전투구하는 미국에 쏠려 있다.
한순간이라도 균형을 잃는다면, 지난 1년간의 공든탑은 섬광처럼 무너질 수 있다.

 

불과 1년전에 사느냐 죽는냐를 고민하던 지구촌이 출구전략을 저울질 할 만큼 빠르게 회복된 것이다.
이미 대략의 예상 답안은 나와 있다.
상대적인 회복속도를 고려할 때 이머징은 대략 금년(4Q)에서 내년초(1Q), 써프페미리는 내년초(1Q~2Q)가 될 것.
출구전략의 집행은 유동성 회수의 금융장세의 마지막 퇴장을 의미하며, 동시에 실물의 성장과 연동하는 실적장세의 시작을 알린다.
3Q의 막바지를 달리는 현단계 글로벌 증시는 금융+실적의 불안정한 장세에서 다소 깨끗하지 못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금융과 실적이 혼재된 상태의 아이덴티티로 유동성의 닝겔을 뽑을 수도, 계속 놓을 수도 없는 애매모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표면상으로 죽은듯이 보이는 금융위기가 수면 아래에서 여전히 미약하나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인데.
최근 3Q 막바지까지 이어온 꾸준한 흐름과 막판 스퍼트를 내는 궤적으로 미루어 적어도 4Q까지는 별다른 저항없이 순항이 예상된다.
갈 것이냐 못갈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갈 것이냐의 속도를 채근하는 행복한 고민일 것이다.
오랫만에 근사한 산타랠리도 즐길 수 있을 것.

 

역시 속도차에 의한 시기가 문제 일  실적장세로의 이행 후 글로벌 증시의 궤적은 한층 복잡해질 것으로 추측되는데.
전지구촌이 본격적인 경기팽창 국면에 진입했거나 진입을 시도할 4Q 이후의 궤적은 유동성의 동시다발적 패턴에서 벗어나
대륙별, 국가별로 실물경제의 성장이 실리는 차별화의 궤적을 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차별화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위와같은 예상을 뒤집을 수 있는 변수는 현재 두가지로 추측되는데.
하나는 맏형 미국의 시소게임이 발을 헛디뎌 실패할 경우와, 또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미금융제국주의의 패권에 얽힌 각국의 치열한
신경전이 크게 확전되 증시가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
전자의 가능성은 빨라야 내년 1Q 쯤에나 걱정할 문제이며, 후자의 농후한 가능성도 경기회복의 암묵적 합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칠 것으로 추측된다.

연말쯤 경기팽창이 예약되 있는 코스피는 적어도 내년 1Q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우상향의 궤적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나 빨리 얼마만큼 갈 것이냐는 그야말로 신의 영역일텐데, 최소한 깊은 조정과 오랜 기간의 횡보는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과거진행형의 페로몬을 쫓는 개미군단
개미에게 페르몬은 맹목적인 시그널과 같은 존재이다.
시장에서 메이저가 취급하는 정보는 양과 질에서 개미의 그것과는 비교불가의 극심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결정적 구간에서는 언제나 빗나가는 과거진행형의 후행정보에서 개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연에 멎은 행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모든 기술적 분석은 메이저가 쓰다버린 용도폐기된 정보의 지나간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연의 행운을 실력과 자신감으로 우겨 넣은 개미군단의 나르시즘은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손실에 이르러서야 종지부를 찍는다.
저 예정된 실패가 개미군단의 불가항력적 숙명임에도 개미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개미지옥의 참혹함을 기어이 확인한다.
과거진행형의 페르몬을 맹목적으로 쫓지 않는 오직 1%의 영악한 개미전사만이 살아남는 것이 시장의 냉혹한 현실이다.

 

대체 1%의 개미들은 누구일까?
예컨데, 용도폐기된 후행정보의 실체를 간파하고 그 위험물질을 여하히 다룰 수 있는 소수일 것이다.
코스피가 달나라에 상장된 시장이 아닌이상 궤적을 추론하는 가장 정확한 근거는 지구촌 경제의 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찾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당연함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경제책 몇권 읽었다고 시장을 통찰할 수 있는 혜안이 금방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익은 단견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허세의 슬픈 오만은 일자무식의 낮설음보다 위험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안다는 것은 그의 문학적 텍스트를 줄줄이 꿰고 있음만이 아니다.
그의 텍스트의 이면에 숨어 있는 광활한 러시아의 묵직한 서사성을 온몸으로 전율하는 것이 진정으로 도스토옙스키를 통찰 하는 것.
지구촌 경제를 꿰뚫어 흐르는 맥 또한 표면적인 현상의 요약이 아닌, 지하 깊숙히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지하수맥 같은 것이다.
단순히 경제학 전공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면, 지금쯤 지구상엔 온통 부자들로 북적거릴 것이다.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은 저 페르몬의 후행지표를 요약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상의 이면을 꿰뚫는 직관과 통찰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페르몬으로 얼룩진 시장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에게는 아니며 천부적으로 타고 나는 것.
학자집안에서 학자가 태어나고 부자가 부자를 낳는 기득권의 세습이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은 DNA가 그렇기 때문이다.
1%의 개미는 그렇게 태어난다.

 

1%의 개미가 되려하지 말고, 1%를 닮으려는 99%의 개미가 되어라
삶에서 비관과 낙관의 태도는 어쩌지 못하는 선천적인 것이므로, 그 어느 쪽에 젖는 것은 타고난 운명인 것.
추세의 꺽임을 목격하기 전에는 백열등 아래 비관의 소주잔을 기울이기 보다, 프리미엄이 녹아 흐르는 부자들의 와인잔을 기우려라.
작은 것에 기뻐하고 상심하는 서민들의 애환보다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부자들의 습관을 길들여라.
탐욕과 혼돈이 어우러지는 이 곳에서, 그저 닮는 것만으로도 계좌는 훨씬 기름질 것.
엘리트의 멘토를 찾아 닮는 것도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