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이 실종된 커뮤니티는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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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는 변명하지 않는다.
자신이 빚은 모든 일을 감당하고 책임을 지므로, 궂이 변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매사를 확신에 차 자신있게 처리하므로 실수가 드물지만, 일단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한치의 변명없이 깨끗이 인정한다.
능력껏 처리한 일에 대해서 지극히 마땅한 것이므로 일체의 공치사가 없으며, 스스로의 실수에 대해서 가혹할 만큼 단호하다.

 

시황란에서 시장을 오판한 댓가는 치명적인 것이다.
계속되는 시장기회를 박탈하고 잦은 매매를 부추겨 누군가에게 손실을 입힌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것.
그러나, 저 가혹한 비판의 1차적 이유보다 더욱 더 모질게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과연 사람으로서 원칙이란 게 있나 싶을 정도의
자기중심의 가벼운 엿바꿔먹음이다.

 

이 곳에서 한번 실수의 병가지상사를 질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암묵적 합의 일 것인데.
서너차례, 아니 십수차례 실패한 머리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들이미는 천연덕스러움은 정말이지 구토까지 느껴진다.
요즘들어 필자가 상스러울 정도로 그들을 몰아 부치는 것은 더이상 기억상실의 뷰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격체로써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 나체의 도덕적 불감증에 대해서다.
대체 자존심과 양심을 스스럼없이 내 팽개치는 자의 뷰가 온전할리 있겠는가.
차라리 주구장창 한방향을 주장하는 것은 얄팍한 조변석개의 뷰의 가증스러움보다 깨끗한 것일 수 있다.
하나의 신념으로서 저버릴 수 없는 자기 중심이기도 한 것 아니겠나.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역질 나는 행태가 있으니.
조변석개의 도덕적 불감증과 결탁한 대중적 대리배설의 종교적 시온이즘이 그것이다.
도토리 키재기의 안목을 가진 동병상련의 히스테리컬한 고해성사는 정말이지 장관이다.
특히, 그들은 한글을 깨친 자라면 누구라도 단박에 알아 볼 수준미달의 정크페이퍼에 유난히 관대한데.
저 잡글은 종종 양의 탈을 쓴 대중의 광기가 채워준 6.25 괴뢰완장으로, 또 손안대고 코풀기의 대리 배설구로 이용된다.
할배의 담배값 같은 낙서의 잡글을 통한 은밀한 마스터베이션이 그것이다.
그저 다중인격의 타액이 줄줄이 젖어 흐르니, 뭐나 되는 양 더 설쳐대는 정신나간 꼭두각시의 환각.

 

아시다시피, 필자는 누이좋고 매부좋고의 흐리멍텅한 끈적거림을 질색한다. 
그때마다 저 다중인격의 척박한 자기중심들이 주문처럼 외어대는 도덕경과 마주해야 하며,
아이디를 바꿔 나타난 듣보잡의 필명들에게 조변석개의 설교를 들어야 한다. 
도마위에 올려질 걸 알면서 감행된 비판은 오만과 독선으로 하릴없이 전락하기 일쑤인데.
왜 하필 양심을 비판하는 글에서만 이어야 하는가.

마이너리거는 매사 변명 일색이다.
자신으로 빚어진 실수에 대해 전전긍긍의 변명에 열중하기에도 벅차므로 책임 따위는 애초에 없다.
우연에 멎은 공치사로 치장하기 바쁘고, 실수에 메스를 들이대면 자신도 모르게 혼동과 아전인수의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이 곳에서 그런 군상들의 패거리진 광기는 이미 익숙한 장면인데, 이름하여 우매한 군중의 위험한 광기이다.
그런 자들에게 씨도 안 먹힐 도덕과 양심을 말하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황란은 누군가의 저 시간낭비가 필요한 곳이다.
시황란은 유유상종의 동호회가 아니라, 수익의 극대화를 위한 시각을 개진하고 탐색하는 합목적 공간인데
따라서, 정확한 시장판단은 이곳에서 최고의 선이며 그 어떤 가치도 수익성 재고의 시장판단에 우선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반복되는 허물을 침묵하거나 덮어주는 것이 인격과 겸양으로 비춰지는 이 곳의 아이러니한 현실. 
적어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자라면,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낮선 자유에 익숙해져야 한다.
끝없이 반복되는 부도덕한 짓거리를 질타하는 건강한 비판이 군중의 광기에 헐값에 팔려 나가는 무가치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더우기, 그저 몽매한 인지상정에 숨어든 팔색조들의 면죄부로 희석되어서는 더욱 더 안되는 것이다.
수익성에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한 있을 수 있는 치열한 논의가 가십의 마스터베이션 소재로 쓰여서도 안되는 것.
비판의 상스러움을 탓할 것이 아니라, 상스러워질 수 밖에 없는 척박한 커뮤니티 질을 탓해야 할 것.

 

너무 깊은 타성이어서,
이미 오래 앓은 천식같은 것이므로, 무를 수 없는 참혹이라고 말하지 말자.
누군가의 시간낭비가 하나 둘 늘어갈 때, 시황란이 훨씬 값지게 느껴질 것이니.
아마도 필자의 시간낭비는 개나소나에게는 아닐 것이며, 허락된 겸손 또한 개나소나에게는 아닐 것인데.
비판이 실종된 커뮤니티는 이미 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