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 비가오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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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과잉 정서의 글로벌화

현대 물질테크로라시를 잉태한 것은 정보, 통신, 교통의 3대 트로이카 체제이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교통은 재래식 시공간의 개념에서 공간을 도려내고 지구촌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눈부신 통신기술 또한 획기적 처리속도로 정보의 폭발적인 팽창을 가져오며 시공간의 개념을 지구촌에서 사실상 해체시켰다.
전통적 비대칭의 시간과 공간이 공평해지면서 지구촌에서 정보의 비대칭은 상당부분 해소되었는데.
이는 결정적으로 글로벌자본주의 시스템을 잉태하고 가속화시켰으며,  동시에 집단과잉 정서의 전지구적 획일화를 구현했다.

  

집단과잉 정서의 출구 - 두바이

가창오리의 집단비행을 본 적이 있는가. 
타는 노을이 시들 무렵이면 강변을 박차고 일제히 날아올라 그들만의 의식을 시작한다.  

머리속에 칩이라도 박혀있단 말인가.. 저 거대한 무리의 순간적이고도 반복적인 일사분란한 움직임은 그야말로 넋을 빼앗는다. 

저 어두운 하늘에서 대체 어떤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저 큰 무리지음이 저토록 정교한 군무를 펼치는 것일까.

몇분 동안 그렇게 그저 망연자실 넋나간 감탄을 뒤로하고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들이 야행성의 먹이활동을 떠나기 전 워밍업의 집단의식을 벌이는 이유는 여전히 불가사의다.

 

두바이발(發) 원투펀치에  글로벌 궤적은 연이틀 정신이 나가 있다.

오늘 코스피 또한 75포인트(4.69%)의 폭락을 기록하며 연중 두번째의 긴 장대음봉을 세웠다.
이는 금융위기가 시작된 작년 11월 6일의 89.28포 이후로 최대 하락폭이며, 지난 1월 15일 -6.03% 이후로 가장 깊은 낙폭인데.

실로 1년만에 목격되는 '글로벌 정신나감'의 집단적 패닉에 하릴없이 휩쓸린 하루였다.

 

어제 오늘 언론과 증권사가 도배한 두바이월드에 대한 정보는 이미 더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래전에 덮어뒀던 반년묵은 재료가 언론과 증권사를 통해 다시 살아난 것은 그만큼 글로벌 경제심리가 살얼음판이었음을 증거한다.

인간은 종종 확신이 흔들릴때 집단과잉 정서를 잉태하는데, 때마침 두바이는 저 한껏 억눌린 집단히스테리의 출구였다.

가창오리의 불가사의한 그것처럼 본능적인 집단의식의 장엄한 볼레로의 표출이었던 것.

 

상반기에 비해 훨씬 느려졌지만 실물의 회복속도는 진행중에 있다.

저 탐욕의 툭툭 꺽인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나오는 데 어찌 고속도로만 같았겠는가.

지금껏 우리는 숱한 현상의 굴곡마다에서 채이고 밟히며 회복세의 믿음과 증거를 가지고 그저 묵묵히 크루징을 수행해 왔다.

변한 것은 없다. 다만 오늘 우리는 오랫만에 본능의 광기가 내뿜는 흔치않은 홍역을 앓았을 뿐이다.    

 

남미에 비가오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

우리는 정보의 융단폭격 속에서 살고 있다.

본래 참과 거짓이 없는 정보는 생산되고 가공되어 유통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참과 거짓에 대해 중립이다.
오직 정보의 최종 소비자만이 검은 것이다.. 흰 것이다..를 판별하는데, 그것이 정보의 속성이며 동시에 유용성이다.
때문에 정보는 누가 소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내 놓는다.
주식시장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대체로 비슷한 거짓말의 나열로 보면 정확하다.
그러므로 저 정보의 홍수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경로로 가공된 시장정보는 언론과 증권사를 출구로 대중에게 흘러든다.

레버리지의 팜므파탈에 다름아닌 두바이월드는 레버리지의 버블을 못이겨 스스로 자폭한 저 금융버블의 군불에 불과하다.

1년 동안 크고 작은 산불을 성공적으로 진화해 온 숱한 베테랑들이 과연 대규모 진압작전에 나설만한 크기인가는 의문이다.

저 작은 불씨가 혹독한 겨울을 견뎌온 산전수전의 글로벌 궤적을 10%나 공중분해시킨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느린 글로벌 회복이 잉태한 집단과잉 정서의 버블이 터져버린 공포어린 장면이면 족한 것이다.

언론을 포함한 모든 제도권 저널리즘에서 진정한 정보를 캐내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  

 

집단최면의 반대편에 서있는 통찰의 투자자는 다르다.

말할 수 없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시장이 종종 느닷없이 멍청해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서 무관하지 않는 집단과잉을 기억해 낸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말했다.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이므로 우리의 지성과는 다른 체계로 움직이며 다른 언어를 쓴다고.

현상 이면의 것을 통찰하는 직관을 키우는 것, 어쩌면 투자에서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토록 살고 싶어한 누군가의 내일이다.

남아메리카에 비가 내리면 커피나무를 걱정할 게 아니라 스타벅스 주식을 사야 한다.

 

 

 


팍스넷 쟈끄리느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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