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속의 주식한주 | 이탈리아 총선 사태는 12처

지난 한주는 이탈리아 악재로 휘청이다가 주 후분에서 회복되며 증시가 마감하였다.

지난주 동영상 투자전략에서 간략하게 해외 이슈에 대한 본질에 대하여 이야기 한바 있으나 우리는 이에 대하여 좀더 깊이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경제라는 것은 때로는 규제와 완화를, 때로는 감세와 증세를, 때로는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일 필요가 있는 것이 경제인데 개인의 아집과 이권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12처에 의한 한계를 가지다 보니 경계에 도달하면 분쟁으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12처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안이비설신의 6근과 색성향미촉법 6진을 말한다.

즉 보고 듣고 말하고 맛을 느끼는 온몸으로의 일체의 감각기관을 말한다.

한때 성철스님께서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을 남기시고 사람들은 이를 해석하기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말라는 뜻이라며 존재론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재미를 샀던적이 있었다.

8세기 중엽 당나라의 청원선사의 말에 의하면,

" 내가 30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는데 훌륭한 스승을 만나 깨침을 얻고 보니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었고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 그러다 이제 정말 깨침을 이루고 보니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은 물로 보였더라"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를 놓고 정말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으로 해석하지만 장롱의 생각은 다르다.

아무리 사물을 바로 보아도 저마다 다른 12처의 특성을 고려하면 그 본질은 다르며 그러기에 끈임없이 싸우고 정쟁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말하는 말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아니다.

이세상에 누군가는 반듯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진리체계에 대하여 연구하는 수행이 없다보니 깨치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뜻을 세우고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 오늘날 케인즈니 하이에크니 하며 경제적 논리를 세워 정쟁을 벌이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대의적 민주주의라는 것도 바로 인간의 한계적 문제때문에 이를 조화시키고 융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지난 그리스 사태때에도 두번의 재선거를 거쳐 최소적인 분쟁완화를 이룬 것처럼 이탈리아도 현재 그 단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싸움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쟁의 싸움이 있고 약육강식의 논리로 빼앗기 위한 무력적 싸움이 있다고 하면 진정한 위험은 후자의 싸움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싸움의 특성을 이해한다고 하면 그것이 위기인지 기회인지를 알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의적 민주주의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여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힘의 논리로 독재를 하는 것이 위태롭다고 하면 이탈리아의 민주주의의에 대한 이해와 행동력을 보면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갈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년의 자본주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역사속에서 수도 없는 연구와 분석을 통해 체계화 시키고 수정해 오며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들을 역사라는 것을 통해 보여주었고 결국 사람의 탐진치만 아니라고 하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직 한국이 나아가야할 길은 멀고도 멀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바로 보고 노력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에 따라 답이 있기 마련이다.

수년간 엔화강세로 힘들었던 일본이 엔화약세를 통한 문제해결이나 수출을 열심히 하여 축척한 달러로 내수를 돌보려는 중국이나 서브프라임 사태로 부동산가격 하락이 있었던 가운데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이나 저마다의 환경에 맞게 노력하고 있고 해법도 다르다.

하지만 옆집에서 콩나물 장사한다며 국민들에게 우리도 콩나물 장사를 하자고 설득을 넘어 급진주의를 펼친다고 하면 이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서양에는 서양의 문화가 있고 동양에는 동약의 문화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우리에 걸 맞는 문화가 있을 것인데 우리의 문화는 땅에 묻어 두고 남의 것만 무작정 쫒아 하려하니 옷에 맞지 않는 옷 입고 불편해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혹여 옷이 커서 벗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이치와 다를바가 없다고 하면 분명 우리의 사정에 맞는 우리 몸에 맞는 옷은 분명 있을 것으로 본다.

 

장롱은 지난 작년부터 특별회원 교육에서 끈임없이 반복해서 언급했던 것이 "경제는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 切 唯 心 造)라는 말과 같이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인데 이런 기본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온갖 정책을 펼쳐봐야 부작용만 발생하고 그 효과는 크지 않더라 라는 말을 한바가 있다.

기본이라는 것은 위로는 지도자가 아래로는 국민이 저마다의 본분에 맞는 질서와 책임을 가지지 못하고서 어느 한쪽에서의 책임과 기본을 강요한다고 할때 그것이 얼마나 진정성 있고 지속될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설사 가진것 없어도 될수 있다는 강한 신념과 의지가 만천하에 감동시킨다면 그 이상도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라고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기본이 없다하여 힘들다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탐진치를 고려하면 다수의 행복은 아니더라도 소수의 행복이 다수를 위장하는 효과를 만들어 낼수 있다.

GDP, 거시경제라는 지표가 가진 함정을 이해한다고 하면 얼마든지 꾸며질수 있고 그 꾸밈에 국가 전체를 춤추게 할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지만 적어도 금수강산 한번정도는 탈바꿈 할수 있는 원동력은 되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부자 3대는 간다고 하는데 잘못된 정치로 적어도 한세기 또는 반세기는 버틴다고 하면 누구 말 마따나 " 나만 아니면 되지 "라는 말 처럼 무시할 수도 있다.

 

위의 말이 다소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경제라는 것이 수치로서 해석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수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경제도 있지만 숫자로 해석되기 어려운 철학적 측면도 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철학이지 수리가 아니라고 보면 위의 이야기는 어렵게 생각할 내용이 아닐 것이다.

즉 산이 산인지 아니면 산이 산이 아닌지에 대한 존재적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그에 몹지 않게 사유적 해석도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점이다.

투자역시도 내일 몇프로의 수익을 보장해줄수 있느냐에 승부하기도 하지만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가 새로운 도전을 만들고 큰 결실을 만들고 그속에서 실패한자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따슷함이 있다고 하면 그길에 투자하는 것도 값진 투자라 할 수 있다.




김춘삼 장롱속의 주식한주 - http://cafe.daum.net/hanhwaseong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