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으로

'

 

장미에게 가시는 존재 이유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장미의 존재감은 가시의 역설에 있다.
가시를 탓하면서 그의 아름다움을 취할 수는 없는 것, 그러므로 장미에게서 가시 또한 아름다움의 일부분이다.
가시가 없는 장미의 아름다움은 이미 죽은 것이다.


글쓰는 태도와 삶의 자세 또한 다르지 않다.
가시가 없는 글은 대체로 죽은 글이며, 가시가 없는 삶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진정한 천재는 상반되는 정보를 평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모순되는 문제와 쓸모없는 정보조각처럼 보이는 것 안에서도 패턴을 찾아 내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다.
이 곳에서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진실이 허구보다 낯설 때 독자들은 후자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 중에서 가장 큰 잘못은 '잘못을 모르는 잘못'이다.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뜻을 나누는 사람 한둘은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공기를 호흡하는데 반드시 큰 대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들창문 하나로도 족한 것.

 

네미시스님, 소피님.

사실이지, 내가 그들의 멀티 아이디라는 루머조차도 영광스럽게 들릴만큼 난 오히려 자랑스럽다.

벌써 갔어야 옳으나, 비내리는 질척한 진흙밭같은 이 곳에서 여전히 글을 쓰는 이유는

어쩌면 저 특별한 두 분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삭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