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 역사 (1) - 네덜란드 튤립 투기




코스톨로니 글을 2권째, 횟수론 세번째 읽고 있습니다. 작가가 강조하는 의도를 명확히 이해 못했는데, 약세장에 들어서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세=돈+심리'로 해석합니다. 돈이라는 부분은 금리에 따른 유동성으로 일반인도 정보접근이 가능합니다. 돈에 관한 이해는 짐로저스의 글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심리라는 부분은 챠트 등을 참조하지만, 사실은 큰 스케일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임을 느낌니다. 이제 투기의 역사를 4편, 튤립, 남해상사, 켕캉프와, 대공황을 통해 심리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긴 글이라서 차근차근 연재합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아한 꽃, 튤립이 전형적인 경제 붐과 공황의 상징이 된 것은 운명의 아이러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신출내기 주식투자자 ...들이 귀담아 두면 유용한 교훈이 될 것이다.

 

튤립은 17세기 차분한 국민성의 나라였던 네덜란드 경제를 뒤흔들어 놓았는데, ... 터키 파견된 독일 황제의 공사가 터키인이 '터번'이라 부르는 꽃을 보았는데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을 만큼 좋았다. 귀국하면서 이 꽃을 가져와 '튤립'이라 불렀다. 식물학자들은 개량해 북유럽에 맞게 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네덜란드인들이 넋을 빼앗길만큼 튤립을 좋아하게된 때는 지난 후였다. 처음에는 서민들이 즐겨 심던 평범한 꽃에 불과했으나, 점차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꽃으로 변했다. 귀부인들은 장신구 색깔에 맞는 튤립을 정성스럽게 골랐으며 ...튤립으로 치장한 사륜마차를 타고 다녔으며...이웃집에 없는 희귀한 튤립을 모으는 것이 훌륭한 취미로 간주될 정도였다. (오늘날 미술품 수집과 비슷)

 

...귀족을 선망하던 허영에 들뜬 사람들이 헤이그 귀족들의 이 바보 같은 행동을 따라했다. ...값이 뛰기 시작했고, 수요는 더욱 늘어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튤립 알뿌리가 거래되는 7월부터 9월까지 값이 절정에 달했다. 노련한 자산가들은 민첩하게 튤립 알뿌리에 투자를 했다. 거래가 크게 늘어나자, 주식을 주무르던 온갖 투자자들이 대거 튤립시장으로 몰려들었다. ...

 

1637년에 이르러 결국 풍선은 터지고 말았다. 대규모로 거래하던 한 고객이 튤립 납품업자로부터 그동안 그가 받았던 350가지 품종이 모두 이미 시장에 나와 있으며, 이제 희귀품으로서의 매력이 사라졌다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투자자들은 튤립 인플레이션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결말은 항상 똑같다. 누군가 "불이야!"하고 외치면 모두들 비상구를 향해 몰려든다. 그러고는 모두들 팔려고 하지만 살 사람이 없다.

 

결국 튤립 풍선이 터져버렸고, 그때부터 튤립 알뿌리는 흔해빠진 양파보다도 대접을 못 받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백만장자였던 튤립 투자자들이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래시장의 붕괴다.

 

가치없는 것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투기야말로 대규모 경기호황이 최종단계이자 돈이 물처럼 흘러들어가는 강세장의 제3국면의 정점에 도달했다는 징후다. 이러한 현상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강세장은, ...중간 수준의 주식 시세를 비이성적으로 상승하게끔 만들고, 마침내는 무가치한 주식까지도 대거 상승 흐름에 포함시킨다. 이와 같이 새로운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깨질 수 밖에 없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한몫 잡으려는 욕심에 터무니없이 높은 값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유럽의 모험가들은 튤립을 구입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몰려들었고, 그 결과 튤립값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현금이 바닥나자 신용으로 튤립을 샀다. 어느 날은 붉은색 튤립이 인기가 있다가 곧바로 노락색 튤립의 값이 올랐갔다. 이어 장밋빛과 검은색 튤립이 나타났다. 마치 오늘날 하루는 (강세장에서) IT주가 급상승하다가 다음날은 석유주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튤립 투기꾼들은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거나 네덜란드에 외국 튤립이 들어올 수 있다는 사살은 간과한 것이었다. 결국 투기의 풍선은 터질 때까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유명한 월가든 작은 증권거래소든 상관없이 주식시장의 반응은 항상 동일하게 나타난다. 쥐와 개구리에 대한 실험결과는 코끼리 문제를 다루는데도 유용한 것이다.

 

---------------- 다른 곳에서 copy & paste -------------------------

1637년 2월 5일 네덜란드 알크마르 튤립 경매장에서 양파 모양의 튤립 뿌리 하나의 가격이

무려 4억원에 팔릴 정도로 '튤립 투기'가 극에 달하였다. 특히 '황제튤립' 한 뿌리면  암스텔담의

대저택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도 비싼 현상이 일어난다.

 

자본주의 경제의 기반을 세계최초로 마련한 네덜란드에서 모든 사람이 미친 세계최초의 투기

광풍과 대폭락이 벌어졌다.

 

귀족, 상인, 변호사, 농장주, 선원, 농부, 시녀, 시종, 굴뚝 청소부 할 것 없이 모두가 튤립

시장에 가진 돈을 쏟아 부었고 나중에는 프랑스 사람들 까지 튤립 투자에 뛰어들었다.  

  

튤립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일반 서민들 까지 빚을 내어 투자에 나섰다. 튤립 뿌리 하나의

가격이 너무 비싸고 양도 부족하자 튤립 뿌리를 살 수 있는 권리를 싸게 파는 거래가 나타난다.

옵션 거래가 나타났다.

 

`튤립 광풍'은 1636년 12월~1637년 1월 최고점으로 올랐다가 2월에 고가에 튤립을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여 너도나도 다투어 팔기

시작하여 투매 현상이 나타났고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하고 거품이 꺼지자 유럽은 세계최초

의 경제공황에 빠져들었다.

 

튤립 투기 (1634년 ~1637년) : 상승률 5900%, 상승기간 3년, 하락률 -93%, 하락기간 10개월

 

불안을 느낀 일부 투자자가 손을 떼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튤립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여 

하루 만에 가격이 절반으로 떨이지기도 하고 결국 튤립의 가격은 이전가격의 1%수준, 심지

어 그 이하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튤립은 헐값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파산을 하게 되었으며, 결국 정부는 매매 가격의

3.5%만 지불하면 채무를 변재해주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유례없는 경제 공황을 겪게

되었고 결국 영국에게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뺏앗기는 과정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