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가와 긴조 이야기 


일본에서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은 두 명 있습니다.
한명은 캔들차트를 발명한 쌀거래의 신 "혼마 무네히사"이고, 다른 한명은 일본 역사상 최초로 주식투자만으로 소득세 1위에 올랐던 "고레가와 긴조"입니다.
그는 벤자민 그레이엄보다 가치투자를 먼저 실천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손절매'를 중시했다는 겁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 놓은 글이 있어 퍼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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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가와 긴조의 투자전략 - 거북이 3전법..

 

 

투자의 神이라 불리는 고레가와 긴조는 단돈 300만엔으로 1,000억엔의 수익을 거둔 일본의 전설적인 투자자이다.
 
가난한 어부의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는 몇 번의 사업실패를 거듭하며 가난에 허덕일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에 회의를 느끼고 3년간 독학으로 세계경제연구에 몰두했다. 참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와신상담하며 자본주의 시장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필사의 노력 끝에 그는 ‘자본주의 경제변동은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이고, 주식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파동에 따라 투자해야 한다’는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후 고레가와 긴조는 1931년, 34세 조금은 늦은 나이 본격적으로 주식투자를 감행했고, 일본 역사상 최초로 주식투자를 통해 거둔 소득만으로 소득세 납부 1위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투자의 방법에 대해 “주식투자의 기본을 지키고, 경제의 흐름을 끊임없이 공부한 것 외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면서 “실패하는 투자자들이 기술적인 차트를 분석하는 반면, 나는 경제를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경제변동이 주가 흐름에 결정 짓는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거북이 3법칙’을 끈질기게 고수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시세가 바닥에 있고, 우량주이며, 실적인 호전된 종목을 매수해 적정평가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 바로 데이트레이딩에 승부를 걸지않고 가치투자라는 단순한 투자기법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둘째, 경제의 흐름을 주시하고 쉴 틈 없이 주식을 발굴했다. 등락을 오가는 주가에 연연하지 않고, 일정한 특징을 가지고 반복되는 경제변동을 예측한 것. 이를 통해 그는 매입 시기를 선택했다. 바로 바닥에서 상승국면으로 전환하는 시기를 매수찬스로 본 것이다.
 
셋째, 투자에 무리수를 두지 않고 자기자본 내에서 투자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단기간의 수익을 기대하며 지나친 욕심으로 미수, 신용거래 등을 쓰다 보면 실패할 경우 대응할 여력이 없어지고, 종국엔 재기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레가와 긴조는 성공투자를 희망하는 개인투자자들을 위해 “장기투자야 말로 가장 손쉬운 방법”임을 토로하며 “오늘, 내일의 시세에 급급해 수시로 매매를 하는 것 보다는 조금은 지루하고 답답할 수 있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고수익을 노리는 가지투자를 지향할 것”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주식을 매입한 순간부터 매도 타이밍을 염두 해 두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단기투자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경기와 주식 공부에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또한 “시세에 미련을 둘 때가 가장 큰 위험을 자초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시세에 냉철하게 대응 할 수 없다면 “보유 주식의 1/3을 매도할 것”을 권했다. 냉정하게 시세를 관망할 때 비로소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레가와 긴조의 투자전략 - 손절매 전법..

 

 

일본 증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식투자자로 손꼽히고 있는 고레가와 긴조는 벤자민 그레이엄에 앞서 가치투자를 펼쳐 보인 인물이다.
 
그는 주식투자에서 30여 년간 뼈 아픈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투자원칙을 고수하여 85세의 나이에 1조원 이상을 벌어들인 바 있다.
 
60여 년간 주식투자에 몸담으면서 고레가와 긴조가 깨달은 것은 경기의 파동을 예측하는 것 외에도 주식투자에서 성공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주식시장에 맞서 진검승부를 펼쳐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직접 철저하게 투자종목을 조사했고, 확신을 갖고 시세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특히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으면 재빨리 손절매하는 냉철함을 유지했는데, 매도해야 할 때를 놓치면 그것으로 수익을 거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시 ‘언제 팔 것인가’에 대한 어려움은 있었다. 그가 주식투자에서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원인도 바로 매도 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 있었던 것.
 
일례로 고레가와 긴조는 1978년 일본 광산들이 구리가격 하락으로 적자를 면치 못해 생산을 중단하자 도와광업 주식을 주당 120엔에 3,000만주 사들였다. 구리의 생산량이 적어지면 수요가 폭등할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이듬해 도와광업의 주가는 409엔까지 올라갔다. 당시 고레가와 긴조는 주가가 500엔에 달하면 70%의 주식을 매도할 생각이었으나 급등 추세가 계속적으로 이어지자 목표가를 변경하고 보유량도 확대했다.

 더욱이 900엔을 돌파하자 다시 과도한 욕심을 부려 목표가를 1,000엔까지 상향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900엔을 정점으로 주가는 하염없이 폭락해 4개월 만에 400엔 이하로 떨어져 투자 원금만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불러 엄청난 수익기회를 놓쳐 버리게 된 것이다.
 
투자 실패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고레가와 긴조는 이후 투자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손절매 원칙을 고수했다.
 
81년 9월 그는 스미토모 금속광산이 금광을 발견한 사실을 접하고 주식 지분의 16%에 해당하는 5,000만주를 230∼240엔에 사들였는데, 6개월뒤 주가가 1,000엔을 돌파하자 과감하게 모든 주식을 처분해 200억엔을 벌어들이며 그 해 일본에서 가장 큰 수익을 거둔 인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고레가와 긴조는 “투자실패를 통해 성공적인 주식 투자비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토로하며 수익률 극대화의 비결로 “손절매 원칙을 고수”할 것을 강조했다.
 
고레가와 긴조가 주식투자에서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경기 파동예측을 무기로 삼아 공격적인 주식투자를 감행하고, 손절매 원칙을 고수해 손실을 최소화 하는 방패로 삼은 데 있었던 것이다.

 

 

고레가와 긴조의 투자전략 - 넝마주 비법..

 

 

일본의 전설적인 투자자 고레가와 긴조는 주식투자 자체를 승부사라 생각하고 냉엄한 주식시장에서 60여 년간을 고군분투한 인물이다.
 
그는 “경제 변동에 따라 주가가 움직인다”는 생각에 경제자체를 큰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매일매일 경제신문을 읽고 국내외 경제현상을 기록했다. 주가의 파동을 보는 훈련을 습관화한 것이다.
 
또한 주식투자는 예측과 결단이 승부를 좌우하는 만큼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평상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밤낮을 가리지않고 주식공부에 매달렸다. “주식투자의 진정한 묘미는 떨어진 벼 이삭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라며 “벼 이삭이 튼튼한 씨앗인지를 알 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연구하고 종목을 탐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칠 줄 모르는 철저한 연구와 열의, 오랜 투자기간의 경험을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고레가와 긴조는 자신의 투자성공에 대해 “기본을 벗어나지 않은 투자”와 “자신만의 투자원칙고수에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소외된 넝마주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넝마주식이란 내제가치가 충분하지만 시장에서 주목 받지 못한 주식으로, 모두가 주식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봤을 때는 이미 시세가 고가에 도달한 뒤기 때문에 이를 기선제압 하는 것이 큰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넝마주는 바닥을 끝내고 상승의 전환점에 있을 때 과감하게 매수 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넝마주는 주가의 움직임에현혹되지 말고 장기투자에 승부를 걸어 이익을 극대화 하라”고 조언했다. 예측이 적중했을 경우는 큰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고, 설령 예측이 벗어나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 해도 어차피 저가에 매수한 주식이어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고레가와 긴조는 자신의 투자 실패를 통해 무엇보다 매도 타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매도전략을 살펴보면,

첫째, 주가가 최고가를 3번 돌파하는 삼산이 보이면 마지막 반등에서 매도했다.

둘째, 시세가 기울면 10% 이내에 손절매했다.

셋째, 천정을 친주가가 2주 내로 전고점을 돌파 못하면 새로운 종목으로 이식매매 했다.
그는 이러한 매도원칙을 통해 “손실은 적게, 수익은 크게 거둬들일 수 있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고레가와 긴조는 “욕심을 통제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훌륭한 투자원칙이라도 지켜낼 수 없다”면서 주식을 “마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눈 앞의 이익에 현혹되어 쉽게 이성을 잃어버리지 말 것”을 강조한 것.
 
이렇듯 욕심을 비운 담담(淡淡)한 마음이 이룩한 쾌거일까? 60여 년간 치열하고도 아름다운 승부사를 펼쳐보인 고레가와 긴조는 개인투자자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이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20억엔의 사재를 털어 ‘고레카와 장학재단’을 설립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제로서의 삶을 실현한 것이다.
 
마지막 투자대상을 사회사업으로 선택해 진정한 가치투자를 몸소 실천한 고레가와 긴조는 1992년 95세의 나이로 여생을 마감했지만, 현재까지도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에게 특별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