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과열 진단


다음 중 증시 과열의 '꼭지'(상투)를 알리는 속설은? 

①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한다 

② 집이건 회사건 술자리건 온통 주식 얘기뿐이다 

③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주식 사달라고 조른다 

④ 논과 땅을 판 농부와 애 업은 엄마가 객장에 등장한다 

정답은 ④다. ①부터 ④까지는 증시가 뜨거워지는 단계이기도 하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④쯤 되면 증시가 돌이킬 수 없는 '버블'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1999년 IT버블당시 객장에는 농부와 주부들이 꽤 등장한 예가 있다. 

하지만 요즘 증시는 이런 속설로 잘 안 먹힌다. 객장 대신 온라인거래가 활성화되고, 웬만한 투자자라면 '상투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투자패턴도 과거와 크게 달라진 탓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과열을 가늠할 새로운 '속설'은 없는 걸까. 시장 전문가들이 말하는 '나름의 속설'을 통해 과열여부를 진단해보자. 

"죽어도 주식 안 한다더니…."-과열이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최근 전화를 자주 받는다. 은근히 떠보거나 주식 해도 되냐는 문의가 대부분. 정 부장은 "주식으로 말아먹고 죽어도 안 하겠다고 맹세한 지인들이 슬그머니 주식투자를 고려하는 걸 보면 과열이 맞다"고 했다.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술자리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술집 여 종업원이 이른바 '종목을 찍어 준' 것. 종목 추천은 엄연히 애널리스트의 영역. 그는 "술집 종업원이 주식 얘기에 시큰둥하면 바닥, 얘기에 솔깃하면 상승기, 손님에게 종목까지 일러주면 과열"이라고 귀띔했다. 

공짜 라이터의 숫자로 가늠하는 이들도 있다. 증권사 J 부장은 "홍보용으로 받은 라이터 수가 호주머니에서 차츰 줄기 시작하면 과열로 본다는 속설이 있는데, 지난해 말엔 하루 5개 정도였는데 최근엔 1, 2개가 고작"이라고 증언했다. 

객장 분위기는 어떨까. 강남 일부 지점에 '아줌마 도시락 부대'가 다시 등장하고, 재미없는 경로당대신 스펙터클한 객장을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건 과열 신호라 할 수 있다. 지방이 좀 더한다. 김성근 삼성증권 마산지점장은 "주식을 전혀 안 했던 주부, 20대가 간간이 보인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1면을 보라"-과열 아니다 

김성봉 삼성증권 연구원은 "유동성 장세는 본디 '과열'을 안고 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과열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그는 "과열이면 증권사 보고서 추천이 '매수' 일색인데, 아직 '중립'이나 '비중축소' 의견도 있다"고 했다. 

종합일간지(경제지 제외) 1면에 증시 활황 기사가 아직 드문 것도 이유다. 시황기사가 주요기사로 처리되는 횟수가 늘고 분석 역시 긍정적이면 과열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이다. 

분명 객장을 찾는 숫자는 두세 배 늘었지만, 아직은 손실을 떠안은 기존 투자자가 많다는 것도 과열 신호는 아니다. 최모(80) 할아버지는 "조금 더 오르면 팔아야 하는데 이게 뭐 장이 좋은 거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어떤 속설도 과열여부를 정확히 가릴 수 없다는 게 현 시장상황의 특징. 그만큼 시황이 복잡하고, 과열과 과열 아닌 징후가 뒤섞여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