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하강 끝났다..한은 총재 발언의 배경은

"시장에 경고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 vs "현재 경제상황 가감없이 전달한 것"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경기 하강세는 거의 끝났다고 생각된다"고 말한 것이 시장에 적지않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3년만기 국채금리는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20bp 가량 올랐다. 금통위 결과는 기준금리를 2.0%에서 동결하는 것이었지만 한은 총재의 이례적인 경기 낙관론 언급이 사실상 시장 금리를 올려버린 셈이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경기 하강세가 거의 끝났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던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한국은행 총재의 입에서 나온 코멘트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사실상 금리를 올린 것과 다르지 않은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 "뭔가 있다..단정적 표현 꺼리는 李총재 스타일 감안해야"

이날 이성태 총재의 발언은 원론적으로만 보면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수준이다. 이 총재는 "경기하강세가 거의 끝났다"고 언급하면서도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경제활동이 아직은 부진하고 단기간 내에 크게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속한 하락세는 끝난 것 같은데 앞으로 치고 올라갈 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여전히 중립적인 경기 인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제상황이 불확실하다는 언급은 매달 계속되어 온 것이라는 점에서 시장은 `경기 하락이 끝났다`는 '새로운' 발언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특히 경기하락속도가 둔화되고 있다거나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등의 두루뭉술한 표현 대신 `하락이 끝났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구태여 선택한 것에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다.

채권시장의 한 애널리스트는 "가능하면 확언이나 단언을 하지 않는 이성태 총재의 발언 스타일을 감안할 때 사실상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의미"라면서 "그동안 큰 사이클을 형성했던 통화완화가 이제는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도 이 총재의 발언을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으로 해석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가 금리인하 이후의 휴지기 과정이었다면, 6월 금통위를 기점으로 금리인상 시점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전환됐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카드를 꺼내들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 총재가 코멘트를 통해 사실상 시장에 `옐로우 카드`를 꺼내보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크게 염려스러운 방향으로 확산된 것 같지는 않다`는 언급도 금리 인상을 두려워하는 채권시장에는 위협적으로 들렸다는 반응이다. 부동산 가격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주의깊게 보고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는 의미다.

한 애널리스트는 "채권시장에서 절대적인 위험요소로 인식하는, 자산가격에 대한 발언이 있었다는 점과 물가에 대한 잠재적인 불안요인이 있다고 언급한 점, 유동성이 통화완화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유동성이 과도한 수준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이 모두 채권시장에는 비우호적"이라고 평가했다.

◇ "경기하강이 멈췄다는 것..확대해석 말아야"

그러나 이 총재의 이같은 코멘트에 대한 한국은행 내부의 시각은 좀 다르다. 전체적으로는 채권시장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한국은행 관계자는 "좀 과민반응인 듯하다"면서 "경기 하락세가 멈췄다는 표현과 바닥을 통과했다는 표현, 상승세로 접어들었다는 표현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 총재의 언급은) 각종 지표들이 내려가는 쪽 보다는 좋아지는 쪽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냉정하게 언급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 총재의 발언을 바로 (시장에 대한 경고성 사인으로)연결시키는 것은 발언한 의도와는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의 잇따른 경제지표 호전이 이 총재의 경기인식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꾼 것은 확실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4월과 5월에 나오는 숫자들을 보면 2분기 GDP는 아직 숫자를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의미있는 플러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발언보다는 금통위의 공식 발표문에 한국은행의 스탠스가 담겨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향후 성장의 하향위험이 상존한다'는 표현을 살려 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경기가 하강을 멈췄다는 금통위의 공식 발표를 이 총재가 하락이 끝났다고 표현한 것"이라며 "멈췄다는 표현과 끝났다는 표현은 같은 것이고 다만 경기가 옆으로 갈지 올라갈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강은 일단 끝났다는 것이지만 더블딥이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앞선 해석이고 내려오던 경기가 멈췄다는 것으로만 해석해 달라"면서 "총재의 발언을 새로운 국면을 준비하라는 사인으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