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실수

'

 

"제독!

오늘은 2차 대전 당시 결국 독일을 패배로 몰고갔었던 '히틀러의 실수' 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꾸나!

독일이 전쟁에 진 것에 대한 원인으로 많은 전쟁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온갖 핑계를 갖다 대지만 실제로 내가 검토해본 결과 대부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어이없는 말장난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더구나!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주는 '히틀러의 실수' 는 단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되더구나!"

 

"그게 무엇인가요?"

 

"흠,

첫 번째가 영국을 침공하는 어이없는 '바다사자 작전' 이었다.

성공확률 1%도 되지 않을 어이없는 작전이었지만,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만일 독일의 영국 침공이 이루어지면 5000 만 영국인들 중에서 최대 500 만명 이상의 군대가 탄생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당시의 군사만을 생각해서 몇 십만명 밖에 없는 영국군이라면 그럭저럭 상륙해서 싸워볼 수 있다고 말하곤 하지.

때문에,

덩케르크에서 약 25만명의 영국군이 후퇴한 것을 놓고 그것을 막았다면 하는 생각에서 전쟁 패배의 원인을 찾기도 하는데,

실제로 덩케르크의 진행상황을 가만히 보면 그 누구도 실수한 것은 별로 없었고 거의 필연 그 자체였으며,

3일을 지체하지 않았다고 해도 영국군은 대부분 다 철수 할 수 있었다고 했었다.

나중에 엄청난 차량까지 탈출시키다가 독일군이 와서 일부 버려두고 가는 상황이었으니 3일을 지체하지 않았다고 해도 영국군을 포로로 잡을 확률은 거의 없었는데 히틀러에게 패전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사람들이 계속 저 덩케르크 사건을 들먹이곤 하지.

저런 부류의 사람들이 다시 핑계대는게 '바다사자 작전' 을 실행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던 '영국 방공전' 을 들먹이곤 한다.

예컨데,

'독수리의 날' 로 표현되는 독일군이 공중전에서 승리한 날 격추된 영국 비행기는 60 여대 정도였고,

'영국의 날' 로 표현되는 영국군이 독일 폭격기를 섬멸한 날 격추된 독일 비행기는 기껏 70대 정도였지.

수 천대의 보유 비행기 중에서 극히 일부였을 뿐임에도 마치 저 날 승패가 결정된 것처럼 떠들어 댄다.

심지어는 저 영국방공전 기간에 1 ~ 2주만 더 비행장을 폭격했다면 이길 수 있었는데 런던을 폭격하느라고 폭격을 하지 않아서 졌다고 하는 사람들마저 많이 있더구나!

독수리의 날이 8월 13일 이었고,

독일 공군이 실수로 런던을 폭격한 것이 8월 24일 이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 이후 10일 정도 영국이 베를린을 4회 정도 보복 폭격을 했었고,

독일 공군이 목표를 비행장이 아닌 런던으로 바꿔서 대규모로 폭격하기 시작한 것이 9월 7일 이었고,

'영국의 날' 이 9월 15일 이었으니 말이 안되질 않느냐?"

 

"앗!

진짜 그렇네요?

8월 24일 부터 9월 6일 까지의 시간만 해도 2주 이상의 시간이 되는데요?

그리고 기껏 비행장 폭격을 멈추고 런던 폭격을 시작한지 8일 만에 궤멸되었던 영국이 수 백대의 전투기를 띄워서 '영국의 날' 을 만들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겨우 8일 만에?"

 

"내가 전문가랍시고 떠드는 사람들의 글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느끼는 것이 저런 것들이었지.

전투기와 폭격기가 떨어져서 날아오자 그 틈새를 이용해서 독일 폭격기를 공격해서 효과를 보자 독일 폭격기의 조종사들이 불평을 했었고,

그 때문에 독일 공군이 전술을 바꿔서 전투기와 폭격기가 함께 날아오자 그 새로운 전술에 대한 공격방법을 찾던 영국인들이 7일 동안의 시간동안 잠시 뜸을 들이고 마침내 9월 15일 전투기들의 연료를 소모시키는 전법을 이용해서 기껏 폭격기 70여대를 격추시켜서 '영국의 날' 을 만들었는데 저것 때문에 2차 대전이 패배하게 되었다느니, 영국방공전에서 지게 되었다느니 하는 말들이 어이가 없지를 않느냐!

'영국 방공전' 에서도 말했드시 내가 찾아낸 원인은 바로 전시체제로 들어선 1940년 영국의 항공기 생산량이 15,049대에 미국에서도 대량으로 항공기를 수입해 왔었다는 저것 자체였다.

저 엄청난 항공기 숫자를 생각하면 기껏 몇 십대의 항공기가 격추된다고 전쟁의 승패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것이지.

 

따라서 '히틀러의 실수' 첫 번째는 저런 전투에서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모한 '바다사자' 작전을 실행하려고 '영국 방공전' 을 시작한 그 자체였다.

성공가능성이 없는 전투는 할 필요가 없었지.

저 '영국 방공전' 기간에 영국 런던에 대한 폭격과 도시 90% 이상을 폐허로 만들어서 '코벤트리화 하다' 라는 형용사를 만들어내는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영국인들의 극심한 분노를 유발시켜서 결국 소련군이 독일군 지휘관에게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 전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아닌 '영국방공전' 이라는 답을 듣게 만들었던 것이지."

 

"하지만,

왜 '영국방공전' 에서 진 것이 전쟁의 승패를 갈랐나요?"

 

"어허 제독!

영국방공전에서 이기고 지고는 관련이 없었다.

어차피 무한히 생산되는 전투기 때문에 끝없는 소모전이었을 뿐이었다고 하질 않았더냐!

하지만,

저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 발생했는데 저것이 극심한 영국인들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하질 않았더냐!

예전,

영국인 집에서 잠시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그 영국인은 독일을 무척이나 싫어하더구나!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바로 저 2차대전 때문이라고 했었지.

결국,

영국 방공전 자체는 괴링이 영국에 대한 마지막 대규모 폭격으로 겁을 주고 끝냈으나,

저것은 독일만의 생각일 뿐!

영국은 계속 생산되는 막대한 항공기와 미국에서 수입해오는 항공기로 이번에는 거꾸로 독일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게 된다.

앞에서도 얘기했드시,

2차 세계대전은 보병이 아닌 탱크와 비행기 특히 항공기 전력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영국에서 대규모 폭격이 계속 진행되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수비하느라 많은 항공기를 남겨놓고 계속 소모전을 벌여야 했으며,

영국의 폭격으로 탱크 등의 전쟁물자 생산에도 막대한 지장을 받았었지.

스탈린그라드 전투이후 독일군이 소련군에게 급격하게 무너진 가장 큰 이유가 히틀러의 전횡 또는 독일 지휘관들의 자질이 아니라 바로 항공기, 탱크 등의 물자 부족이었다.

반면에 소련군은 압도적인 탱크, 항공기 등으로 독일군을 궤멸시켜가게 된 것이었지."

 

"아,

대충 이해가 됩니다.

결국,

'바다사자 작전' 이라는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목적을 위해서 '영국 방공전' 이라는 쓸데없는 전투를 시작해서 영국인들의 막대한 분노를 초래했기 때문에 영국군의 지속적인 폭격으로 항공기 손실, 탱크 등의 생산에 막대한 지장 등이 발생하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두 번째 실수는 뭔가요?"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사가들은 '모스크바' 공격을 중단하고 광활한 곡창지대이자 공업지대 등으로 유명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 를 공격한 것을 패배의 원인으로 삼기도 하지.

'키에프' 에서 포로로 잡은 소련군만 65만명 이상이었다.

100 만명 정도의 독일 남부 집단군에겐 전방의 소련군 뿐만 아니라 배후의 저 엄청난 소련군 자체가 막대한 위험요소여서 진격을 중지하고 오히려 되돌아와서 '키에프' 의 소련군의 준동을 막아야 하는 처지였다.

즉,

스탈린 자체도 모스크바 보다는 키에프를 위시한 우크라이나와 코카서스 유전지대를 더 우선시 했다는 뜻이지.

따라서,

저렇게 모스크바를 공격했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만일 중부집단군이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동안 키에프의 엄청난 소련군이 후방에서 공격하고 전방의 소련군이 협공을 해서 남부 집단군이 궤멸적인 타격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독안에 든 쥐 '키에프' 를 공격하지 않아서 전쟁에서 졌다고 핑계를 댈 사람들이다."

 

"말씀을 듣고보니 히틀러가 모스크바 공격을 중단하고 '키에프' 를 공격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렇지.

또한,

모스크바 공격 실패이후 작전에 실패할 때 마다 히틀러가 지휘관을 바꾸고 자꾸 장군들의 지휘권에 간섭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저것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예컨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후퇴를 용인하지 않고 나중에는 '만슈타인' 등의 유능한 지휘관들마저 해임하는 등의 전횡을 일삼게 되는데 저것은 원인과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전쟁에서 지게 되었으니 저런 지휘관들을 교체해서 분위기를 일신하려고 한 것이지 저런 지휘관들을 해임했기 때문에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 도대체 전쟁에서 지게 된 히틀러의 두 번째 실수는 무엇인가요?"

 

"그렇지.

히틀러의 두 번째 실수는 스탈린이나 공산당을 타도의 목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슬라브인종' 자체를 절멸시키는 목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참으로 멍청하고 어이없는 실수였지.

1억 9000 만명이나 되는 슬라브족 전체를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으니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군의 2/3 를 궤멸시키고 90% 이상의 목표를 달성했어도 슬라브족은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니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군대로 뛰어들어가서 무한공급이 가능해진 것이었지.

사실,

히틀러가 '스탈린' 자체만을 타도의 목적으로 삼았다면 '모스크바' 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최대 2000 만명까지 학살했다는 스탈린의 '예조프시나' 때문에 발트 3국, 우크라이나 등등의 나라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부에서도 적이 많았었지.

때문에,

만일 '스탈린' 만을 목적으로 했었다면 독일군에는 엄청나게 많은 '반스탈린' 군대가 모여들어서 손쉽게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키에프', '민스크', '세바스토폴' 등의 소련군의 저항도 훨씬 약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 스탈린 동맹군이 될 가능성도 높았었지.

그러나,

'슬라브인종의 멸종' 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곧 대부분의 소련군을 궤멸시켰지만 히틀러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소련군대가 계속 증원되고 결국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기점으로 패배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믿지못할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저 두 번째의 '히틀러의 실수' 때문에 설령 히틀러가 모스크바를 공략했을지라도,

나중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승리했을지라도 여전히 독일군이 패배의 구렁텅이로 서서히 들어서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저렇게 되는 데에는 '스탈린 : 역사의 아이러니' 가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지."

 

"그렇다면 히틀러처럼 저렇게 멍청한 짓거리를 하다가 패배한 사례가 있나요?"

 

'저것?

예전 중국에서 전국시대에 진나라가 초나라, 한나라, 제나라 등의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이룬 다음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게 되었다.

저런 이유로 '정' 을 진나라 시황제 즉, '진시황제' 라고 부르기도 하지.

여하튼,

저런 이유로 각 나라의 사람들은 진나라에 막대한 원한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초나라의 '항우' 를 비롯한 많은 반란이 발생해서 결국 진나라를 멸망 시켰었지.

저 때,

가장 강한 군사력을 가진 사람은 항우였는데 그는 진나라를 멸망 시킨 후에 가증스러운 진나라 군사들이라고 항복한 20만 대군을 그대로 학살했다고 하지.

물론,

분풀이는 될 수 있지만,

진나라에 악감정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희열을 줄 수는 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잔인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게 된 것이지.

때문에,

나중에 유방과 항우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우가 아닌 유방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자기가 가진 병력으로만 싸워서 이겨야 하는 '피로스의 승리' 가 되어버렸고,

결국 최대 800 회(공식적으로는 70회 정도)의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는 전무후무한 활약을 보였지만,

단 한번의 패배,

즉, 해하에서의 패배 때문에 스스로 자결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말았다.

물론,

유방 자체도 항우와 싸울 때에는 엄청난 인덕이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

드디어 항우가 죽자 항우보다 더 끔찍한 본색을 드러내어서 결국 대부분의 공신들을 죽이고,

잔인해 보이는 항우는 다른 사람들에게 땅을 나눠주는 아량을 보였었지만 유방은 각지의 왕들을 교묘한 술책으로 다 죽여버리고 아예 중국 자체를 통일해서 '한나라' 를 세우고 황제가 되었던 것이지.

뭐,

저런 이유로 '토사구팽' 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이라도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잘 포용해서 성공한 사례는 있나요?"

 

"저런 사례는 무진장 많다.

위대한 왕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격파하고 그들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나라로 받아들여서 군대로 포섭했었고,

그 이후 페르시아를 정복해서는 역시 학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페르시아의 공주와 결혼하고 부하들에게도 결혼을 장려해서 하나의 나라로 포섭했었지.

때문에,

많은 대군을 이끌고 원정을 계속 할 수 있어서 위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고 가장 위대한 영웅 중의 하나가 되었지.

마찬가지로,

칭기스칸의 몽고 군대 또한 약 10만명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당시 몽골 초원의 유목민이 100만 명 정도밖에 되질 않았으니 군사는 10만명도 많은 것이었지.

하지만,

그는 정복지의 항복하는 사람들을 포용해서 진군이 계속 될 수록 군사가 오히려 늘어났다.

금나라를 정복할 때에는 최종적으로 수 십만명 이상의 군대가 되었었지.

만일,

칭기스칸이 적군을 포섭하지 않고 학살하면서 진군했다면 그 또한 '피로스의 승리' 의 희생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물론,

중국 최고의 황제로 칭송받는 당태종 또한,

전투가 한창일 때에는 적에 대한 섬멸을 목적으로 맹렬히 공격하지만,

적이 항복하고 나면 적장과 나란히 말을 타고 오면서 마치 친구처럼 대해서 자기 편으로 포섭했다고 해서 유명하지."

 

"와!

저런 사례는 주식시장에서도 있을 듯 한데요?"

 

'주식시장?

당연히 세상사에는 저런 것들이 많이 있다.

그냥,

유명한 워렌버핏을 생각해보자꾸나!

그가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고들 하는데 거짓말이다.

그가 적은 돈으로 시작한 것은 맞겠지.

하지만,

그가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다는 소문을 듣고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버크셔 해서웨이' 류의 회사를 설립하고 남의 돈을 투자받아서 대규모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돈만으로는 저런 엄청난 거부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주식투자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들 대부분 다 다른 사람들의 돈을 투자받아서 성공한 사람들이지.

저런 주식투자자 말고 주식회사라는 것 자체가 대부분 저런 것이다.

자기의 돈으로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라는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자본금을 만든 다음 경영을 잘 하면 회사가 커져가는 것이지.

 

물론,

좁게 개인투자자만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은 매달 1천만원을 자본금으로 수익나면 그만큼 인출하고,

손실나면 채워넣어서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런 경우 대부분 수 십번 깡통차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지.

 

나같은 경우에는 주식투자로 발생하는 수익까지 다시 주식투자를 해서 '복리의 혜택' 을 누리는 매매방법을 선호하는 것이고!!"


팍스넷 프리차트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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