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추억

'

경남 지리산 자락에 함양이라고 있습니다.

사실,

지리산 자락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네요.

함양 자체가 지리산보다 훨씬 더 큰데......!

 

어쨌던,

저곳은 남쪽은 1915m 의 지리산이 막고 있고,

서쪽은 1187m 의 삼봉산이,

북쪽은 1507m 의 남덕유산이 가로막고 있죠.

 

결국,

동쪽만 높은 산이 없고,

강물은 다 저렇게 동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도대체 찾아가기가 힘든 두메산골이 되겠고(요즘 대전 - 통영간 고속도로가 뚫어져서 사정이 달라졌음!),

좋게 말하면,

세상에서 동떨어져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라고 해야 겠지만,

 

사실,

6. 25 때는 빨치산들이 발호해서 피의 향연이 펼쳐졌던 곳이기도 하죠.

 

어쨌던,

어려서는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던 것 같네요.

 

봄이 오면 산에 올라가면 '삐삐' 라고,

잡초의 새싹이 막 올라온 것 껍질을 벗겨서 씹어먹으면 달달했고,

집집마다 가보처럼 소를 키우는데,

낮에는 '깽분' 이라고 돌탑처럼 돌무더기들이 가득 들어차있고,

넓은 사격장이 있는 곳에서 소 풀을 먹이곤 했었죠.

냇가에서 고동(다슬기)도 잡고,

저같은 남자애들은 물고기 잡는 것을 더 좋아했었죠.

 

밤이면 모기를 쫓기 위해서 마당에 '모케불' 을 피워놓고,

여름에 너무 더우면 냇가의 다리 위로 나가면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더위를 피해서 나왔다가 이야기 꽃을 피우더군요.

 

잘 때는 다 떨어진 모기장이나마 기워서 펼쳐놓고 자는데,

크기가 작아서 뒤척이다가 모기장에 몸이 닿으면,

다음 날 보면 수 십군데 물려서 벌겋게 되어있곤 했었죠.

 

오늘날,

필리핀 등의 후진국으로 가면 사람들이 순박하다고 하는데,

사실,

욕심부릴 것이 없기 때문에 순박한 것일 뿐이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남태평양 등의 욕심없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문명의 이기를 던져주면 서로 먼저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다투게 됩니다.

 

뭐,

그런 의미에서 동네에서 가장 부자는 도가집이라고 막걸리 만들어서 파는 곳이었죠.

그 도가에서 일하는 머슴들마저 '꼬두밥' 을 좋아하는 아이들(주로 여자애들)에게만 나눠져서 서로 얻어먹으려고 하는 때였으니,

도가집 아들 녀석은 꼬두밥 정도가 아니라 아예 껌 한 통을 사와서는 한입에 다 털어넣고 오물오물 씹으면서 자랑을 해댔었죠.

 

물론,

그럼 그녀석은 왕따 시키고 같이 안놀았죠.

가끔 우리가 나눠먹자고 조를 때,

껌 한개라도 3 ~ 4명에게 나눠줘서 1/4 개 정도라도 씹으면 같이 재밌게 놀았었네요.

 

어쩌다 서울에서 친척집이라고 내려옵니다.

촌놈들 다들 꽤재재해서 있는데,

멋지게 차려입고,

촌놈들 자외선 듬뿍 쬐고 제대로 씻지 않아서 얼굴도 시커무리한데,

하얀 피부까지 갖추고 와서 며칠 있다가 가버리고 나면,

 

어째서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는 여자애하고 같이 잤다느니 하는 소문이 돌았었는지......!

 

하지만,

시골생활에서도 아주 끔찍한 기억도 있습니다.

모내기, 꼴베기, 하루 종일 소먹이기, 벼베기 등은 그럭저럭 아무 생각이 없으니 문제가 안되는데,

며칠 들판에서 말린 볏단을 걷어서 집안 곳곳에 쌓아두고,

'공상(탈곡기)' 돌려서 타작을 하는 때에는,

주로 볏단 줏어 날라서 쌓는 일들을 했었는데,

일할 때에는 별로 몰랐는데 끝나고 나면 볏단 부스러기들이 옷 구석구석 박혀 있어서 콕콕 찔러댔었죠.

솔직히,

밤에 잠도 못자고,

추운 늦가을임에도 차가운 개울물에까지 가서 옷 다벗고 목욕까지 했었지만,

옷 구석구석에 박힌 것들이 잘 없어지지는 않더군요.

 

아참,

시골에서는 싸움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사실은,

싸움이 가끔 있고,

대충 서열이 정해집니다.

A가 B 에게 이겼다는 소문이 나면,

B보다 약한 사람들은 A에게 덤비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웬만해서는 싸움이 잘 없고,

가끔 가뭄이 들면 물 때문에 심한 싸움이 발생합니다.

 

그렇다고 시골 사람들이 다 순박하고 좋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희 동네에도 동네 사람들이 사용하는 동네길을 '탁!' 틀어막고 마치 자기 집처럼 사용하는 막나가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으니까요.

 

약간 충격적인 사실은,

넓은 공터인 사격장이 있고,

그 위쪽으로 깽분 이라고 불리는 수 백군데의 돌무더기들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북쪽을 향하는 음산한 골짜기가 있는데 그 안쪽이 '공동묘지' 였었죠.

그래서 깽분에 있는 납작한 돌들로 '비사치기' 라고 돌치기 놀이를 즐기곤 했었는데,

 

어느 날,

누나가 무서운 얘기를 해 주더군요.

 

누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동생이 어려서 죽었다네요.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

'깽분' 에 묻었다더군요.

 

"깽분??

 아니,

우리가 소 꼴먹이면서 놀이를 즐기는 깽분??"

 

그렇습니다.

사람들 묘지가 있다는 공동묘지는 스산하다면서 두려워서 가까이 가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결혼하지 못하고 일찍 죽은 사람들의 돌무덤이었던 '깽분' 의 수 백구의 묘지들에서는 진짜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돌치기 놀이에 좋은 납작한 돌들이 무지 많다고,

소 꼴먹이면서 놀기 좋다고 헤헤 거리고 놀았었네요.

 

저 깽분의 비밀을 알고 나서부터는 그 곳에 가는 것이 왠지 꺼림칙했는데,

홍수에 다 떠내려가버리고 지금은 운동장이 되어 있습니다.

 

 

어쨌던,

시골 생활의 장단점이라면,

어려서의 추억이 남아 있는 것이 장점이겠고,

무일푼으로 도시로 나와서,

남들처럼 룸쌀롱, 클럽 등등 문명의 이기를 즐기지 못하고 영화 등등도 즐길 줄도 모른채 돈을 모으며 살고있다는 것이 단점이겠네요.


팍스넷 프리차트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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