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사자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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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오늘은 2차 세계대전 최악의 작전으로 생각되는 '바다사자 작전' 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꾸나!"

 

"바다사자 작전이요?

저것 금시초문인데요?

저런게 있었나요?"

 

"그렇지.

히틀러가 지시한 최악의 작전이어서 결국 나중에 폐기되어서 실행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2차 대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저 작전이 실행되었다면 독일이 승리할 수도 있었다고 하는 어이없는 말들을 참으로 많이 하고 있지."

 

"어떤 작전인데요?"

 

"얼마 전에 '체임벌린의 평화' 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더냐!

히틀러가 바로 저렇게 영국을 농락하고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결국 영국을 직접 공략해서 저항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리지 않으면 화평이나 항복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

그래서 결국 히틀러가 영국의 침공을 계획하게 된다.

바로 영국 본토에 대한 상륙작전을 명령하고 그것이 바로 '바다사자 작전' 이었지."

 

"영국 본토에 대한 상륙이요?
영국에 상륙해서 성공했던 적이 있나요?"

 

"오랜 옛날,

영국이 분열된 도시국가 수준으로 쪼개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때 유럽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가 상륙해서 정복했던 적은 있다.

그 이후,

노르망디를 지배하던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해서 오늘날의 잉글랜드를 만들었지.

그 이후는 그 누구도 감히 꿈도 꾸지 못했었다.

한 때,

나폴레옹이 온 유럽을 제패하고 눈에 가시같은 영국을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가,

트라팔가 해전에서 넬슨에게 대패하고 꿈을 접어야 했었다."

 

"앗!

왜 그런가요?"

 

"그것은 대비하고 있는 적에 대해서는 10배 이상 '승수법칙' 을 적용하면 100 배 이상의 전력을 투입해야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이지.

저런 사실은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다."

 

"어떤 역사들이요?"

 

"옛날,

전투에서는 진 적이 없다는 무시무시한 군대가 있었다.

육지를 통해서는 전쟁을 통해서 인류역사상 가장 큰 땅을 차지한 나라였지."

 

"앗!

몽골제국이요?"

 

"그렇지.

그들이 섬나라 일본에 조공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거절했고 원나라는 고려를 통해서 일본 침공을 시도하게 되었지.

당시 원나라 군사들이 머물던 곳(마산 : 당시에는 합포)에서 물을 사용해 몽고간장을 만들었는데 그 때문에 마산이 몽고간장으로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어쨌던,

1차 원정으로 몽고군 2만명, 고려군 7천명 정도가 침공했으나 화포 등의 신식무기를 사용했음에도 교두보 확보에는 실패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승리했으나 적의 기습을 두려워해서 배로 돌아가서 밤을 보냈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

교두보를 확보했는데 배로 돌아간다?

여하튼,

그날 밤에 폭풍이 불어서 배에 있던 원정군이 대규모 손실을 입고 패퇴하였고,

열받은 쿠빌라이가 2차 원정으로 몽골, 고려군 4만 여명, 남송군 10만여명, 각종 함선 4천 4백여척의 대규모 정벌군을 보내서 정벌을 시작하지.

그러나,

결국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하고 두 달 동안 이곳 저곳 탐색하다가 마침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해서 4천여척의 함선과 1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패퇴하였다.

물론,

일본에서는 저 사건을 계기로 '신풍' 즉, 하늘이 내린 바람 '가미가제' 가 자기네 나라를 지켜준다고 믿게 되었지.

약간의 일화를 추가한다면 2차 대전때 일본이 미국의 힘 앞에 절망적일 때 전투기 자살공격만이 미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며 그들을 바로 저 '가미가제' 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앗!

저런 사례가 있었네요.

다른 것은 없나요?"

 

"저런 것?

엄청나게 많다.

'로도스섬 공방전' 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기사 600 여명에 병사 3000 ~ 4000 여명이 지키는 로도스 섬에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투르크의 황제 '메메드 2세' 가 10만 대군을 보냈었다.

전투의 결과는 투르크의 10만 대군의 비참한 참패로 막을 내렸고,

그 이후 투르크에서는 감히 로도스 섬을 공략할 꿈도 꾸지 못했었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역사에서도 유명한 위대한 술탄 '슐레이만 대제' 가 투르크의 황제가 되었을 때 드디어 다시금 눈에 가시같은 로도스섬을 공략하기로 결정했었지.

물론,

'시오노 나나미' 의 표현에 따르면 피로 물든 에게해에 기사단의 승리 가능성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마도 시오노 나나미가 메메드 2세가 보낸 10만 대군의 비참한 패퇴를 몰랐거나,

아니면 3류 소설류의 비장한 감상을 이끌어 내려고 했을 뿐!

겨우 600 명의 기사단은 과거 메메드 2세의 10만 대군을 궤멸시켜버린 것처럼,

이번에도 이슬람군을 처참하게 궤멸시킬 야심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전투도 그렇게 벌어졌다.

5개월여의 전투기간동안 이슬람군은 5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었지.

하지만,

위대한 슐레이만으로 불리는 것처럼 워낙 그가 투르크의 정치를 탄탄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끊임없는 병력과 물자의 보충이 가능해서 결국 그가 승리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저 성요한 기사단이 이탈리아 아래에 있는 자그마한 몰타섬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나중에 슐레이만 대제가 다시 그것을 알고 겨우 540 여명의 기사와 수 천명의 병사가 지키는 곳에 5만명의 대병력을 보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투르크에서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성요한 기사단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물러났지."

 

"와!

과거에도 저렇게 상륙전투는 엄청나게 어려웠었네요?

하지만,

현대에는 무기가 좋으니까 달라지지 않나요?"

 

"더 힘들어졌다.

유명한 '오끼나와' 전투같은 경우에도 본국에서의 추가지원이 불가능하게 고립된 약 10만 여명의 일본군이 지키는 곳에 미군은 1300 척 이상의 대규모 함선을 동원한 무한물자 공급으로도 매우 힘든 전투를 해야만 했었지.

그것말고도,

바로 저곳에서 벌어진 '노르망디 상륙작전' 에서도,

대부분의 독일군이 동부전선으로 투입되어 병력이 별로 없는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하기 위해서 독일 공군과 해군이 아예 없다시피한 상태에서 하늘에 비행기 1만3000대 이상으로 제공권을 장악하고, 각종 함선 6000 여척 이상을 동원해서 성공한 것이었지.

그런데 5000 만 영국인이 살고있는 본토에 독일이 상륙작전을 펼친다고?"

 

"앗!

대부분의 독일군이 떠나버린 곳에도 저렇게 어마어마한 물량이 필요하다면,

영국 침공은 애시당초 가능성이 1%도 없었겠는데요?"

 

"가끔,

역사나 군사작전 등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저런 말도안되는 가정을 들어서 설명하곤 한다.

저런 사람들은 영국군을 몇 십만 정도로 가정하고 독일군이 승리할 수도 있다고 억지 가정을 하면서 히틀러가 저런 작전을 실행하지 않은 것이 2차대전 패전의 원인이라고 아쉬워 한다.

아마도,

2차 대전 초기 독일군의 엄청난 전과를 보면서 그런 전투 능력이면 말도 안되는 저런 작전도 성공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인데,

만일 영국이 아닌 총만 보면 항복하는 이탈리아 였다면 가능했겠지.

그러나,

영국인들은 다르다.

당장은 군인이 몇 십만명 정도 있을 지라도,

만일 독일군이 본토로 상륙한다면 대부분 전투가능한 사람들이 군대로 들어가서 5000 만명의 10% 즉, 500 만명까지의 군대도 확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군 모든 병력이 다 상륙해도 이길 수 없지."

 

"앗!

독일군 500 만명이 상륙한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냐?

그렇다면 2차 대전은 바로 끝이났다.

독일군 100만명이든 500 만명이든 영국으로 상륙한 병사는 보급 불가능으로 대부분 포로가 될 수밖에 없지.

상륙작전의 가장 큰 어려움이 병력수송과 엄청난 장비, 탄약, 유류, 식량 등의 보급의 어려움인데,

상륙한 독일군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 수록 저런 보급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보여준 독일기갑사단과 항공기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이루어낸 엄청난 전과에 혹해서 자꾸만 미련을 가지는데,

저런 기갑사단의 장비들을 싣고갈 수도 없었을 뿐더러,

설령 가져갔다고 해도 저런 기갑사단을 운용할 보급이 불가능했었지.

사실,

프랑스 전역에서의 독일군의 전과는 '토목보의 변' 에서 있었던 몽골기병 2만 여명이 명나라 보병 50 만명을 학살하는 것과 유사한데,

저것은 프랑스군은 공군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기갑사단들을 견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서였다.

마치,

보병 50만명이 2만명의 기병이 빠르게 돌아다니는 것을 눈뜨고 멍하니 바라보면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지.

하지만,

저 때도 일부 기갑병력이 열심히 돌파하다가 보급 특히 유류의 공급이 차단되어서 몽땅 포로가 될 뻔한 상황도 벌어졌었고,

'벌지대전투' 에서는 열심히 돌파했었던 기갑부대가 유류 보급의 부족으로 탱크 다 버리고 도망쳐와야 했었지.

그런데,

설령 상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저런 어마어마한 보급은 생각하지도 않고 독일군이 전력을 유지한다??

물론,

히틀러 또한 처음 열받아서 저런 말도 안되는 작전을 명령했다가,

나중에 슬거머니 취소한 것이었다."

 

"혹시,

제공권을 확보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제공권?

노르망디 상륙작전때처럼 약 13000 여대 이상의 항공기가 하늘을 가득 채울 때 독일 비행기는 몇 대 없는 그런 정도로 압도적으로 제공권을 장악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설령 그렇게 장악했다고 해도 영국해군을 막을 수 없었지.

단지 영국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대낮에,

독일군이 상륙을 감행하고 있을 때,

막대한 해군을 쏟아부어서 대공화기, 소화기 등은 독일 공군과 싸우면서 대구경 함포로 독일 함선들을 마구 사냥하고 다녀서 대부분을 수장시켜버리든지,

2차 대전 일본군이 솔로몬제도 전투에서 제공권을 잃어버렸을 때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밤에 나타나서 함선 등을 공격했던 것처럼,

세계최강으로 불리던 영국해군이 전 해군력을 동원해서 독일 함선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면 일부 상륙한 독일군은 보급부족으로 다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지.

아마,

몽골기병 2만명에게 학살당한 50만명의 명나라 군대의 참패였던 '토목보의 변' 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은 진짜 어이없는 작전계획이었다.

어쨌던,

히틀러는 한참을 저 '바다사자 작전' 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행하려고 하다보니 드디어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결정짓는 전투의 형태인 '영국방공전' 이 일어나게 된다."


팍스넷 프리차트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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