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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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2차 대전사를 보면 독일군이 덩케르크를 점령하고 약 22만명의 영국군을 포로로 잡은 다음 화평을 요청하면 영국이 들어줬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좀 있더구나!

실제로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배하고 나자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미에서 찾아낸 핑계일 뿐이지.

만일 독일 기갑부대가 3일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덩케르크로 달려갔어도 영국군은 대부분 다 탈출할 수 있었다.

아마도,

후방 방위를 위해서 약 2만 ~ 3만명 정도의 결사대를 남겨놓고 있었는데 어쩌면 저들은 치열한 교전끝에 포로로 잡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저들마저 사실은 포로로 잡기 힘들었다.

영국군 22만 6000명, 프랑스-벨기에군 11만 4000명 정도가 탈출하다가 괴링이 자랑하는 루프트바페의 맹공을 받아서 약 3만명이 수장되고 나머지는 탈출을 했었는데,

독일 기갑부대가 3일을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다고 해도 치열한 교전끝에 이미 탈출이 대부분 끝난 영국군은 제외하고 프랑스-벨기에 연합군의 포로는 좀 잡았을 지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독일 기갑부대가 3일간 지체하지 않았다면 영국이 화평제의에 응했을 것이라고 하는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체임벌린의 평화' 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꾸나!"

 

"체임벌린의 평화요?

저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흠,

 히틀러가 전체주의 아래 국가를 전시체제로 바꾸고 열심히 군수산업을 일으켜서 독일 경제를 일으켰지.

사실,

2차 대전의 근본 원인은 바로 1929년의 '세계대공황' 이었어!

저 대공황으로 세계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을 때 독일과 소련은 강력한 전체주의로 가장 먼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들이었지.

저렇게 커져가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히틀러는 여러가지 모험을 한다.

즉,

군대 재무장, 오스트리아 합병 등을 이룬 다음,

체코슬로바키아의 슈데텐 지방의 할양을 요구하였지.

사실,

히틀러는 전쟁위협을 하면 영국, 프랑스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별 저항없이 자기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거든!

때문에 강력한 군사력을 동원해서 위협하므로써 유럽에는 체코 슈데텐 지방의 할양문제로 온통 짙은 전운이 감돌았다.

저 때,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은 프랑스 달라디에 수상과 함께 히틀러와 담판을 짓고,

슈데텐 지방 외에는 다른 것은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줬지.

당연히,

당면했던 전쟁의 위협은 저 협상 하나로 없어졌고 히틀러는 다시한번 독일의 영웅이 되어서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체임벌린 수상은 유럽의 평화를 가져온 영웅으로 온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귀국했었지.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저런 평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조폭들이 돈을 뜯어러 다닐 때,

그들에게 돈을 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계속 돈을 바쳐야 하고,

툭! 하면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안들어주면 가게물건을 부수는 등의 실력행사를 하는 것처럼,

바로 저런 체임벌린의 유약함 때문에 히틀러는 2년 후에 다시 폴란드를 침공하지.

이번에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지만,

이미 그 동안 전시체제로 엄청난 군사무기를 생산했었던 독일은 압도적인 공군력을 바탕으로 '전격전' 을 실시해서 순식간에 프랑스를 점령해버렸다.

저렇게 허무하게 패배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연합군의 지휘관들이 무능해서 구태의연한 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데,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 자체가 아주 무능한 사람들이지.

나중에 롬멜을 무찌른 몽고메리를 포함한 저 때의 연합군 지휘관들 또한 꽤나 유능한 사람들이었지만,

독일비행기 5000 대에 프랑스 비행기 1200 대가 말해주는 것처럼 '승수법칙' 에 따라서 프랑스의 16배가 넘는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공군이 순식간에 궤멸되어져 버리고,

드골 등이 새롭게 강력한 기갑부대를 편성해서 독일에 기동전으로 대결했지만,

프랑스의 기갑부대들은 독일 공군의 밥이 되어버렸지.

프랑스의 지휘관들은 낫질작전 이후,

독일의 전격전에 대해서 예비대와 함께 종심깊은 방어전선을 펼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덩케르크 함락 이후 프랑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는 종심진지로 나름 선방을 했으나,

전선을 돌파한 독일의 기갑부대를 궤멸시킬 공군기가 없어서 전쟁에서 진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발지대전투' 에서는 전격전이랍시고 열심히 돌격해 들어간 파이퍼 기갑부대는 영국, 미국군의 측면공격으로 후속부대가 차단당해서 주간에 비행기의 밥이 되거나,

조금 더 진격하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포로가 되거나 하는 신세가 되어버려서 그대로 탱크를 버려두고 야반도주를 해야 했었다.

만일,

저 당시에 프랑스와 영국군의 공군력이 독일공군을 제압했다면,

독일군의 전격전 즉, 낫질작전은 '발지대전투' 이상의 비참한 패배가 되었을 것이다.

공군이 하늘과 지상을 제압하는 동안,

드골의 기갑부대 등이 독일의 기갑부대와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후속부대를 돌파해서 차단해버리면,

주간에는 비행기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야간에는 보이지 않아서 꼼짝도 못하는 독일의 기갑부대는 기름과 보급이 떨어져서 '발지대전투' 에서처럼 야반도주 하거나 포로가 되는 수밖에 없었지."

 

"그럼 결국 프랑스가 순식간에 패망한 결정적 이유가 공군력 부족때문이었다는 얘기인가요?"

 

"그렇지.

2차 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비행기였어!

바다의 제해권을 결정지은 무기도 비행기를 운용하는 항공모함이었고,

영국군, 미국군이 프랑스에 상륙해서 전투를 할 때에도 하늘에 가득찬 비행기 때문에 독일 탱크들은 전투다운 전투한번 못해보고 없어져 버렸다.

 

따라서 만일 체임벌린이 1937년 체코합병때 평화가 아닌 전쟁을 선택했더라면 훨씬 유리한 전쟁을 했을 것이다.

아니,

사실,

케네디의 선례가 될 수도 있었지."

 

"케네디의 선례요?

저것은 뭔가요?"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기지를 건설하고 있을 때였다.

막강한 소련군이 전쟁 불사를 외치며 니네나라 미국이 아닌 쿠바가 요청해서 하는 일이니 주권침해 하지 말고 비키라며 미사일을 실어나르자,

케네디 또한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전쟁을 하겠다며 미군함으로 막아섰지.

저 때에는 진짜 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결국,

전쟁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었는데 소련군이 전쟁을 벌여봐야  손해가 더 크다고 되돌아 가버렸었다.

1937년 당시에는 독일 공군과 영국, 프랑스의 전력차이가 저렇게 크지 않았고,

따라서 전쟁이 없을 확률도 제법 높았고,

설령 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저렇게 허무하게 패배하지는 않는다.

그 당시 전쟁에 돌입했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영국, 프랑스 또한 전시체제로 들어가서 막대한 숫자의 비행기와 전차를 찍어낼 수 있었지.

저 결과는 조금 있으면 '영국방공전' 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서유럽의 평화를 이루어냈다고 온 국민의 영웅이 되었던 체임벌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체임벌린?

2차 대전이 일어나고 노르웨이까지 뺏기자 수상직을 처어칠에게 물려주고 온 국민으로부터 히틀러를 도와준 매국노 비슷한 소리를 듣다가 몇 개월 살지 못하고 홧병으로 죽었다!!

그나저나,

저런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강경파 처어칠이 그래 설령 덩케르크의 영국군이 몇 만명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독일과 화평하겠느냐?

잠깐의 평화는 얻을 수 있지만 유럽의 점령지를 안정시키고 다시 군수산업을 본격적으로 가동해서 힘을 갖추고 나면 언젠간 다시 영국으로 침공해 올 것이 뻔한 '체임벌린의 평화' 일 뿐인데?"

 

"앗!

진짜 그렇네요?"

 

"저런 것 외에도,

영국인들은 자존심이 무지 강한 사람들이야.

온 유럽을 장악했던 나폴레옹의 위협에도 끝끝내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결국 이겼던 사람들이지.

저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사를 읽어보면,

독일 기갑부대가 3일을 지체하지 않고 덩케르크로 돌격했다면,

바다사자 작전이 성공했다면,

잠수함 작전이 성공했더라면 등등 말도 안되는 가정을 하면서 영국이 항복하거나 독일과의 화평에 응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더구나!

심지어는 V2 미사일의 폭격이 약간만 더 지속되었더라면 항복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지.

내가 볼 때에는,

처어칠이 수상이 되고 나서는 2차 대전에서 영국이 항복하거나 화평에 응할 사항은 단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독일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었을 경우 뿐이지."

 

"저런게 주식시장하고도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주식시장?

어차피 대부분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역사!

얼마 전에 그린스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엄청나게 증가하는 버블의 위험은 무시하고,

돈을 풀어서 경제가 잘 돌아가면 좋은 것이라고 저금리로 자꾸만 경기를 부양해서 그가 FRB 의장으로 있는 동안은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었지.

하지만,

그게 곧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로 온 세계를 엄청난 위기로 몰고갔었다.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일본 또한 1980년대 후반 '일본은 다르다' 며 엄청나게 치솟는 부동산, 주식시장의 버블을 보면서도 당연한 듯이 웃다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주가지수는 고점대비 1/4 정도에서 빌빌거리고 경제 활력을 잃어버려서 잃어버린 20년이 되어버렸다.

다 같이 박수친다고 나까지 같이 박수쳐서는 안되는 것이지.

자칫하면 호미로 막을 것을,

불도우저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팍스넷 프리차트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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