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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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전 친구를 만나서 술한잔하고 거리를 나서다가 친구의 대학교 후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 후배와 갑자기 본의 아니게 형님, 동생 사이가 되었는데...

 

그 넘을 만난지 벌써 몇년이 흘렀것만 난 아직도 그 녀석이 어떤 직장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

대충 그 녀석의 전화를 우연히 엿들어보니 전산용품 납품업체에 외근직으로 근무하는 것으로

대충 추정할 뿐이다.


남들은 내가 가까운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너무 무관심하지 않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이것이 바로 나만의 스타일인것을 어찌하랴...

간혹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상대의 인격 자체보다는 본의 아니게 그 사람의 직업을 보고

가까이 해야될 사람인지 멀리해야 할 사람인지 결단 내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러한 임의적인 차별적 요소를 내 스스로 배제하려 애쓰기 때문에

남의 직업 같은것은 잘 물어보지 않는다.

직업에 무슨 귀천이 있겠는가? 노가다를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그 직업에 만족하고 처, 자식 굶기지

않고 약간의 저축이라도 할 정도의 돈을 벌면은 그것이 바로 최고의 직업이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잠시 빚나갔는데...

그 후배 녀석은 지독한 구두쇠이다.


잠시 이 녀석의 옷차림을 한번 말해 보겠다.

춘추용 검정바지 달랑 하나로 일년을 보낸다.(본인은 똑 같은 것 두벌이라고 빡빡 우긴다)

그것도 마이클 잭슨 스타일로 발목까지 달랑 올라온다.

10월달 부터 겨울 잠바를 입기 시작하여 다음해 6월말 까지 입는다.

겨울에 추운날 외출할때는 작업용 실장갑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누가 쳐다보든 전혀 상관없이 자기 스타일로 사는 넘이다.

 

내가 부산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사무실에 일주일에 두어번 정도로 그 녀석이 찾아온다.

시간대로 따지면 오전 11시 30분 정도 맞추어서 칼같이 나타난다.

 

"행님~ 저왔어예...헤~"

"응~ 왔냐? 너 밥묵었나?"


"은지예~ 아직 안묵었어예..."

"그럼 밥 먹으러 가자"


우리 둘의 대화는 항상 이것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밥값은 100% 나의 몫이다.

 

간혹 저녁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행님~ 퇴근하는 길에 들렀어예"

"저녁은 묵었나?"


"은지예~ 집에가서 묵어야지예"

"그럼 저녁도 먹을겸 우리 소주한잔 할까?


"쏘주예?"

"와? 싫나?"


"지는 양주 아니면 안묵어예~ 쏘주는 먹으니까 머리가 아퍼서..."

"지랄하고 자빠졌네... 오랫만에 고기먹으러 가려했더니만 치아뿌라~"


"고기예? 그럼 가야지에... 빨리 가입시더... 행님예~"

이 잉간...항상 요런식이다.


이렇게 고기 먹으러 가면 소주 한잔 받아놓고 안주빨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행님... 정말로 오래간만에 맛있게 묵었어예~"

흡족한 미소로 고깃집에 나오면서 갑자기 90도로 조폭인사를 한다.

길가는 사람들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본다.

흐미~ 쪽팔려...


이렇게 술 한잔 마시고 그넘을 꼬셔서 인근 당구장으로 데리고 갔다.

 

"너 당구 얼마치니?"

"당구예? 저는 200치는데예...행님은예?"

 

"잘됐네...나도 200친다. 알다마로 할래? 쿠숀으로 할래?"

"그냥 아무꺼나예~ 그냥 시간도 적게 나오는 알다마로 하실까예?"

 

근데...당구를 10분정도 치다보니 이 잉간 200이 아니다.

거의 300이상 수준이다.

그러니 결과는 뻔하다...

나는 계산대로 향하고 그 넘은 공짜 커피라고 벌써 5잔째 마시고 있다.

 

몇일 후 그 넘이 또 찾아왔다.

"행님예~ 오늘 행님하고 당구한번 칠라꼬 또 왔어예~"

"씨바~ 당구점수 사기치는 넘하곤 당구 안친다"


"와예? 그날 화나셨어예?... 오늘은 제가 300놓고 칠께예~ 가입시데이"

슬슬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때는 아니고 내가 이 잉간에게 당구를 이기는 방법은

이 녀석의 심리를 잘 이용해서 정신적으로 흔들리게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밥이나 먹고 가자. 오늘은 내가 돈이 별로 없으니 네가 밥을 사라"

"밥예?...오늘 점심을 늦게 먹어서 별로 생각이 없어예~"

음...생각외로 강적이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쳐야 안되겠나... 나 지금 배고프거든"

"그러믄예~ 오늘은 제가 특별히 모실께예... 라면하고 김밥 묵으러 가입시더"

 

"닝기리~ 쉬퐁...됐다...마!... 그냥 굶어 뒤질끼다."

"와예?... 싫어예?"


 

으으~ 내 스스로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오늘 당구도 힘들게 되었구먼...에효~

 

 

내가 200놓고 그 넘이 300놓으니 그나마 게임이 비슷하게 돌아갔다.

이윽고 결승전에 내가 먼저 쿳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넘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넘의 큐대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것을 발견했다.

ㅋㅋㅋ...이 잉간 그정도 가지고 손을 떨다니...내심 웃음이 터져나오려다 억지로 참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넘 손을 떨다가 실수로 삑사리까지 하고 말았다.

 

이번엔 내 차례다.

공이 스리쿳션을 치기 좋게 모양이 나왔다.

이런 길볼은 눈감고 쳐도 스리쿳션으로 정확하게 맞게 되어있다.

그 넘은 연신 떨리는 손으로 줄담배를 피우며 아주 심각해졌다.

 

드디어 내가 샷을 날리고 공은 정확하게 스리쿳션으로 빨간공을 향해 돌진해 갔다.

그 넘은 포기한듯 큐대를 제자리 갖다 놓으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닝기리~ 공이 0.1mm 차이로 살짝 빨간공을 비키고 지나가버렸다.

그순간 그 넘은 너무 놀래서 발을 움찔 거리면서 뒤로 스텝을 밟았다...ㅎㅎㅎ


"얌마~ 니가 무슨 빌리진을 부르는 마이클 잭슨이냐?...문워크를 다하고...ㅋㅋㅋ"

"휴우~~ 심장이 멋는줄 알았어예~"

 

결국 그날 경기는 나의 승리로 돌아가고 그 녀석은 화장실로 향했다.

나도 뒤따라가서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그 녀석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울분을 가라앉히며 소변기에 바짝 붙어서 나오지도 않는

 억지 소변을 보는 녀석에게 슬슬 약올리기 시작했다.


"당구비 약3만원 정도 나왔을걸~~ㅋㅋㅋ"

"그래예? 그럼 행님은 당구장에서 잠시 기다리세예... 은행 현금지급기에가서 돈찾아올께예~"

"됐다... 내가 계산했다"

"행님!...내가 계산할낀데..."

 

 

비록 나이는 나보다 6살이나 밑이고 차림새도 초라하고

남에게 인색한 후배 녀석이지만 나보다는 백배 나은 넘이다.


피아노 학원을 하는 재수씨와 그 녀석의 수입을 합쳐서 아끼고 아껴서

벌써 몇년전에 근사한 아파트도 장만하고 후배의 홀어머니와 장인, 장모까지 한집에서

모시고 사는 착한 넘이다.

 

쉿!~ 이것은 비밀인데... 그 녀석 어머니와 장인어른은 예전부터 아는 친구사이였다나...ㅎㅎㅎ

 

 

 

 

 

 

빙고 / 거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