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아저씨의 지친 하루

오늘 우리 중산층(서민층?) 아무튼, 30대 샐러리맨의 일상을 살펴볼까요?

 

# 1 아침 밥상

이틀 연속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왔다. 아내가 째려본다.

 

“ 오늘은 얼마 안 먹었어. 맥주 딱 한잔 먹었어.”

 

풀린 다리를 애써 세우며 또박또박 말을 한다.

속에서 이물질들이 세상 구경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참아라, 참아라···.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침 밥상에 앉았다.

오늘따라 노란색이 더 또렷한 카레가 놓여 있다.

 

“ 어제 애들이 카레 먹고 싶다고 그래서.

어제 먹다 남은 거니까 먹고 해치워.

참 그리고 오늘 밥불을 너무 빨리 껐더니 밥이 좀 꼬들꼬들해.”

 

환장하겠네···.

 

# 2 출근 길

출근 길 전철역 가는 길엔 커피자판기와 파라솔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다.

여기서 즐기는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모금의 여유를 좋아한다.

커피 한 잔을 뽑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빠는데

멀리서 아버지가 이어폰을 귀에 꽂으시고 힘찬 걸음으로 내쪽으로 오신다.

얼떨결에 한 모금 마신 커피 잔에 담배를 껐다.

다시 고개를 드니 아버지가 안 보이신다.

허전한 맘을 뒤로하고 전철역을 향하는데 트럭 뒤에 아버지가 숨어 계신다.

서로 어색한 아침 인사를 나눴다.

담배 피우는 아들 뭐가 예쁘다고 오시던 길 차 뒤에까지 숨으시는지···.

죄송합니다.

 

# 3 지하철

몸이 안 좋은데 운 좋게도 금방 자리가 났다. 내 앞에 아가씨가 섰다.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는 바람에 내 앞으로 더 다가선다.

순간 불룩한 아가씨의 아랫배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임산부일까 아님 걍 똥배일까, 두 정거장을 고민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아가씨도 뒤로 돌더니 출입문으로 나간다.

움찔했지만 이미 옆에 서 있던 아줌마의 잽싼 움직임에 자리만 뺏겼다.

어정쩡하게 출입문 근처에서 도착지까지 서서 갔다.

 

# 4 아침 사무실

출근을 했는데 아래 두 놈이 지각이다.

명색이 책임잔데 오늘은 정말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 육점이가 들어온다.

항상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고 한 덩치 하는 놈이라 정육점 필이 난다고 육점이라고 부른다. 아침부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자기 몸 하나 못 챙기고

허우적거린다.

그 모습을 보니 할 말도 없다. 두 번째로 벌구가 들어온다.

입만 열었다 하면 구라쳐서 벌구다.

직급은 아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좀 껄끄럽다.

또 여자문제 때문에 밤새 펐나 보다.

나이 40인 노총각 여자문제를 옆에서 지켜보려면 정말 환장한다.

분명히 여자친구한테 구라치다 걸렸나 보다.

 

# 5 점심 시간

요즘은 식당이 더워서 그냥 사무실에서 시켜 먹는다.

육점이는 또 왕돈까스를 시킨다.

벌써 보름째다. 벌구가 해장한다며 간자장을 시킨다.

벌구는 꼭 술 먹은 다음날 간자장을 먹는다. 해장에 그만이란다.

그 말에 혹해서 나도 간자장을 시켰다.

한 젓가락 먹고 도저히 다음 젓가락이 안 간다. 벌구 말을 믿다니···.

 

# 6 오후 사무실

거래처 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나하고 같은 또래라고 생각하는지 항상 말이 반 토막이다.

다시 한번 사업자등록증 카피본을 확인했다. 74년생.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다.

나도 끝말을 조금씩 흐리면서 반에 반 토막 정도로 대응했다.

이 사람 뭐가 꼬온지 계속 트집을 잡는다.

나도 한 성격 하는지라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 다 사장님이 보살펴준 덕분입니다. 들어가십시오, 사장님.”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찌하랴.

 

# 7 퇴근 시간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 준비를 하는데 벌구가 맥주 한잔을 청한다.

아침에 지하철 탈 때만 해도 오늘도 술 먹으면 ‘내가 개다’라고 생각했는데

시원한 맥주 한잔에 귀가 솔깃해진다. 난 전생에 개였나 보다.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은 빨리 들어올 거지? ’란 아내의 냉소적인 한마디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집에 빨라 가봐야겠다.’란 뻔한 핑계를 대며

퇴근길에 올랐다.

벌구 욕할 게 아니라 내가 벌구다.

 

# 8 우리 집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실실거리며 앵긴다.

동네 아줌마랑 술 한잔 했나 보다. 아내는 술 한잔 하면 앵겨도 너무 앵긴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불쑥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변기에 앉는다.

13년을 같이 살았으니 오래 살긴 오래 살았나 보다. 그리고 변기 물을 내린다.

나 샤워할 때는 변기 물 내리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가뜩이나 수압도 약한 데 샤워 꼭지에서 물이 졸졸 거린다.

 

# 9 밤 시간

나도 이젠 중년이다. 아내 샤워하는 소리가 무서워진다.

동네 형님은 형수님이 샤워하고 침대로 들어가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무협지를 읽는단다.

형수님 잠들 때까지. 아내가 술 한잔까지 걸치면 정말 무섭다.

나도 졸린 눈을 비벼가며 거실에서 늦게까지 TV를 본다.

방문을 빼꼼 열어보니 아내가 잠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 10 늦은 밤

지친 하루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컴퓨터를 켜고 아고라에 들어갔다.

내 맘 편히 쉴 곳은 이곳밖에 없는데···

요즘 한창 뜨는 악플러 ‘갑빠맨’이 내 글에 또 도배를 해놨다.

그래도 이분은 양호하다. ‘시부모 학대 ’. 이분은 벌써 6개월째다.

이분 아내 되시는 분 언제 한번 뵙고 제발 시부모님 좀 모셔달라고 부탁 좀 하고 싶다.

아내가 속이 부대끼는지 엎치락뒤치락 한다.

내일 아침에 빨리 일어나서 카레 데워줘야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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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0대 아저씨의 지친 하루|작성자 나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