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챠트 급등초기 실적대폭호전 손학규대선주 ★ ★~~■

연매출 1조7064억원인 회사가 사옥 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12.04.07 00:30 / 수정 2012.04.07 04:21

[돈과 경제] 파워 중견기업인 …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
미국인 2명 중 1명은 한세실업 옷 입을걸요

★ ★ 챠트 급등초기 실적대폭호전 손학규대선주 ★ ★~~■1349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이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자회사 이름에 기대듯 서 달라고 하니 금세 미소가 번졌다. [박종근 기자]

아버지는 의사였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의관으로 속초 동해전선에 배치됐다. 어린 동욱(김동녕 회장의 아명)은 서울 큰아버지 집에 맡겨졌다. 큰아버지는 제약회사와 농약회사를 가진 성공한 기업가로, 유난히 똘망똘망한 조카를 자주 방으로 불렀다. “동욱아 이리 와 봐라. 여기 이게 장부지?” “예. 그렇습니다.” “나는 말이야, 이렇게 장부를 죽 넘기면 숫자가 머릿속에 좌악~ 들어와. 잘 기장(記帳)하고 잘 분석하는 게 사업하는 데 정말 중요한 거야.” 동욱은 공부를 잘했다.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학자나 공무원이 될 수도 있었지만 큰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장부를 넘기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1972년 의류를 수출하는 한세통상을 세웠다. 섬유산업은 당시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던 최고의 업종이었다. “70년대엔 온 나라에 창업 열기가 충만했어요. 정부가 수출금융으로 돈도 쉽게 꿔주고, 너도나도 사업을 하고 싶어 했어요.” 실제로 회사는 연 1000만 달러를 수출하며 잘나갔다. 하지만 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원사값이 올라 마진이 급감했다. 젊은 사장은 피 같은 옷들을 헐값에 처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납품에 차질을 빚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버텼지만 79년, 회사는 최종 부도처리됐다. 빚만 산더미처럼 남았다.

그룹 매출 1조7064억원 … 사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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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김동녕(76) 회장은 서울 여의도 일신빌딩 6층에서 집무를 본다. 32년 전, 한세통상은 사라졌지만 명함에는 그 이름이 살아 있다. ‘한세예스24홀딩스 대표이사’. 이 지주회사 아래 의류수출 전문기업인 한세실업과 인터넷서점인 예스24(YES24)가 있다. 자회사들의 지난해 매출은 1조7064억원.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닌데도 사옥이 없다. 모두 여의도에 임대한 사무실을 쓰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아직 할 게 많아요…공장도 지어야 하고, 커피도 봉다리(인스턴트) 커피면 되고요”라며 빙긋이 웃는다. 메콩강 근처에 3200만 달러를 들여 짓게 될 베트남 제3공장 얘기다. 실제 그의 집무실에는 책상과 손님을 맞는 소파, 책장이 전부다. 좋아하는 천경자 화가의 작품(복사본)도 걸 곳이 마땅치 않아 그냥 바닥에 세워뒀다.

 한세실업은 82년에 세웠다. 업종은 의류 수출. 하지만 이번엔 차근차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씩 거래를 늘려나갔다. 빚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은행에서 꾼 돈이 아니라 철저하게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꾸려갔다. 지금 한세실업은 의류수출 업체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갭(GAP)·나이키·DKNY·아베크롬비앤피츠·H&M·랄프로렌 등 이름만 들으면 아는 브랜드에 옷을 납품한다. 올해부터는 일본의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에도 들어간다. 중요한 건 단순한 위탁생산에서 벗어나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파는 ‘제조자디자인생산(ODM)’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세실업의 매출은 1조3511억원. ‘미국인 3명 중 1명은 한세실업의 옷을 입습니다’란 광고문구에 기업의 현주소가 잘 나타나 있다. 아니, 지난해 미국에만 2억 장이 팔렸으니 2명 중 1명이 입은 셈이다. 이쯤에서 성공비결을 물었다. 열정과 도전 같은 말 대신 구체적인 답이 나온다.

 “초반엔 낮은 임금이 먹혔어요. 80년대에 이미 생산공장을 해외로 옮겼으니까요. 제일 먼저 사이판에, 그 다음 니카라과·베트남·인도네시아에 지었어요. 그 다음엔 경영 노하우가 빛을 발했죠. 누구나 해외에 공장을 세울 수는 있지만 현지 경영은 많은 경험이 필요한 일이에요.” 저임과 경영 노하우. 그렇다면 미래를 위한 세 번째 전략도 필요하다. 김 회장은 “이제 패션을 팔 때”라고 했다. ODM 방식에 힘을 싣는 것도, 자체 브랜드인 ‘NYbH(뉴욕 바이 한세)’를 론칭(2010)한 것도, 유·아동복 브랜드 ‘컬리수’를 가진 드림스코를 인수(2011)한 것도, 원단 개발자만 50명을 둘 정도로 디자이너 본부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도 ‘진짜 패션’을 팔아보기 위해서다. “한세실업 로고 밑에 ‘패션 월드와이드(fashion worldwide)’라고 쓰여 있거든요. 허세죠.(웃음) 아직은 허세인데 그게 곧 우리 목표라고 봐 주시면 고맙겠어요.”

“철저히 준비해 한 발 늦게 가자”

자체 브랜드까지 내놨으니 당장에 세계적인 패션기업을 노려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라고 한다. 내 실력보다 빨리 가려다 망했으니 실력을 쌓은 뒤에 움직여야 하는데, 당장 명품 브랜드나 H&M·유니클로 같은 대형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로 가기엔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한 발짝 늦게 가자’가 경영철학이란다. “그래도 SPA 쪽과 가까운 쪽으로 가고 싶어요. 가격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대량생산해서 원가를 대폭 낮추되 소비자들의 감성을 만족시켜 줄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거죠.” 큰 딜레마도 있다. 싸게 팔려면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많이 팔아야 하고, 그러려면 가격이 싸야 하고…어느 한쪽을 치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SPA 브랜드는 매장이 커서 한 시즌에 400~500가지 옷 스타일이 필요해요. 희망만 가지고는 안 되 죠. 실제 H&M은 매출이 20조원인 곳이에요. 갭도 15조~16조원이고. 그런데 우리는 대기업 패션 매출도 1조가 넘는 정도예요. 결국 내수로는 안 되고 해외로 나가야 큰 브랜드가 된다는 거죠.”

 그가 지금 주목하는 해외시장 판도는 ‘탈(脫)중국’이다. 의류업체들이 생산기지를 인건비가 높아져 버린 중국에서 동남아 지역으로 속속 옮기고 있다는 얘기다. 김 회장도 이런 변화에 베팅해 중국에서 공장을 철수시켰다. 남은 곳은 과테말라와 니카라과,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공장이다. 실제 세계 의류 브랜드들은 중국 외 지역에 생산기지를 많이 둔 한국 업체들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의류 수입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유니클로가 한세를 찾은 것도 같은 이유다. 한세실업은 만든 옷의 90% 이상을 미국에 수출한다. 이걸 2~3년 안에 15% 정도는 유럽 등으로 다변화시킬 계획이다. 미국 비중을 크게 잡은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해 미국의 의류 수입은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여기서 1%만 차지해도 10억 달러, 1조원이 훨씬 넘는다. 직원들은 요즘 공공연히 말한다. ‘우리가 (미국시장에서) 2~3%는 할 것’이라고.

“예스24,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 포털로”

그의 책장에는 책이 모조리 가로로 뉘여 있다. 그렇게 해야 더 많이 보관할 수 있어서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로마인 이야기 4, 5권』 『죽음의 미로』 『흑산』 『테러의 시』 가 있다. 올해 읽은 책이다. 안데르센과 롤드 달의 동화책부터 스릴러·연애소설·고전까지 종류가 참으로 대중없다. “1년에 25권 정도 읽는데 절반 이상이 소설이죠. 경영서적이나 실용서보다 소설이 좋아요. 순수한 제 취미니까요.”

그는 2003년 예스24 인수를 “참 희한한 인수합병 이었다”고 회상한다. 2000년부터 M&A에 관심을 뒀고, 수많은 섬유기업들이 매물로 나왔지만 번번이 성사가 안 됐다. 그때 우연히 예스24 인수설이 나와 알아봤더니 아쉽게도 다음(Daum)과 가격까지 합의가 된 상태였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막판에 협상이 깨지게 된 것. “둘 사이의 조건을 그대로 다 받았어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나서야 예스24의 최대주주를 만났으니 묘한 M&A였죠.” 고객과 직접 만나는 소매업은 오랜 소원이었다. 인수 당시 예스24는 적자기업이었지만 (실제 인수 후에 거래은행은 대출한도를 깎아버렸다) 회원이 250만 명(지금은 800만 명)이라는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스24는 인수한 지 3년 뒤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디지털분리·창고관리시스템을 도입해 물류비를 아낀 게 주효했지만 진짜 원인은 맨파워라고 믿는다. “회사는 그때도 인터넷 1위였고, 우수한 직원들이 있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장이 와서 멀뚱멀뚱 앉아 있으니 직원들이 ‘우리가 다 알아서 해야겠구나’라며 단합한 거죠. 허허.” 예스24의 창업자인 장웅씨는 김 회장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사옥을 지어 파주 북시티로 이주해 달라는 것. ‘종합몰’이 되지 말고 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달라는 것. 회사 이전은 ‘출판사면 몰라도 서적 유통업체로선 매력이 없다’는 직원들의 반대로 접었다. 하지만 두 번째 당부만큼은 지킬 생각이라고. 김 회장은 “이르면 5월, 한글과컴퓨터와 함께 10만원대 고성능 전자책 리더기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모바일 시대에 맞춰 변화하되 그 중심엔 책이 있는 문화 포털, 그가 그리는 예스24의 미래 모습이다.

이소아 기자
중앙일보-대한상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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