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야 - 삼성 갤럭시탭 7인~11인치 수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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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형→소형' 기술력 진화 … 1천억 클럽 진입 목표 
[굿 기업 굿 브랜드] ㈜일야하이텍
 
 
 
‘日野(일야)’.

소는 햇볕이 강하게 내리 쬐거나 비바람이 치거나 눈보라가 일어도 들판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쟁기를 잡은 주인과 한 마음이 돼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불평없이 맡은바 일을 해낸다.

들판에 나선 소 같이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촉하며 날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일야 하이텍(대표·강재우)’.


    
 

 

회사 이름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가 걸어온 길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일야하이텍은 플라스틱 금형사출을 통해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다.

휴대폰 제품군 등 소형 제품과 컴퓨터·모니터·비데·전자제품군 등 중형 제품, 자동차 인테리어·복사기·김치냉장고·드럼세탁기 제품군 등 대형 제품을 다룬다.

과거 중·대형 제품에서 현재 소형 제품으로, 특히 휴대폰에서 태블릿PC, PMP 등으로 기술력을 진화시키며 국내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올해는 터치패널과 거래처 다변화로 ‘1천억 클럽’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78년 서울에서 직원 6명,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한 일야하이텍은 1991년 남동공단 1단지로 둥지를 옮긴 ‘1세대’ 기업이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중·대형 사출만을 다뤘다.

주로 일본업체와 국내 삼성, LG 등과 거래를 했고, 1980년대 초 국내 가전 붐이 일면서 사출의 앞 단계인 금형까지 구축해 설비를 갖췄다.

 

    
 

일야는 고도의 금형기술을 플라스틱 사출 성형분야에 접목시켜 끊임없는 기술 개발을 통해 6~7개의 대기업 및 중견기업들과 거래를 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1990년대에는 앱손, 삼보, 신도리코 등 PC업체들과 손을 잡았고,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 인테리어를 다루며 가전, PC, 자동차 등 중·대형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그 결과 일야는 2002년 코스닥 상장을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회를 맞았다.

2003년 전까지 주로 중대형 플라스틱 금형사출을 다뤘다면 그 이후부터는 소형 정밀 사출인 휴대폰 기구물 제조를 시작했다.

휴대폰 등 모바일 분야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더 넓다는 것을 예감한 것이다.

2007년 이후 일야는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금형 설계에서 금형 제작, 사출 성형, 휴대폰 조립 및 생산까지 진행하는 일괄생산체제(EMS)를 구축했다.

EMS는 일야의 기술 경쟁력이다. 이를 통해 납기 단축은 물론, 품질 및 가격 경쟁력 향상, 부가가치 배가 등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체제에 대응하기 위해 2001년 중국 심양에 공장을 짓고, 중·대형 제품군을 이전했다. 2005년에는 중국 위해에 현지 법인을 설립해 삼성 프린트사업과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일야는 2009년 LG전자㈜, ㈜팬텍을 통한 로컬 수출이 전체 매출의 50%인 351억원을 차지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고, 510여 개의 협력업체와 관계를 맺으며, 매출액 840억 원, 영업이익 72억 원, 당기순이익 43억 원을 달성했다.

일야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갔다.

지난해 1월 평택에 공장을 짓고 터치패널 관련 설비를 마련한 것이다. 당시 사출부터 터치까지 다루는 업체는 일야가 처음이었다.

그해 5월 국내 최초로 금속박막을 이용해 그물망 형상의 센서 전극을 형성함으로써 전도성 및 투과성을 향

    
 

상시킨 터치패널 및 그 제조방법을 특허출원 했다. 윈도우에 전기 전도성을 가진 투명도전막(ITO·Indium Tin Oxide) 필름을 합착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강화 글라스에 직접 ITO 물질을 증착·가공해 투명극 패턴을 형성하는 새로운 터치스크린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10월에는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국책 과제에 ‘중형 정전 용량 방식 터치패널 제조기술’이 선정됐다.

현재 휴대폰군은 2000년대 초 만큼 사업 분야가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태블릿PC 등 또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아이패드가 선보이기 전부터 일야는 종전 3.5~5인치 미만의 터치패드 기술에서 7~11인치로 크기를 키운 터치 시장을 공략했다.

국책 과제에 선정된 후 기술 진행사항을 문의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일야는 ‘소’와 같이 앞만 보고 달리는 우직함은 물론, 회사와 직원들간의 신뢰를 통해 만들어졌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8년 IMF 당시 임직원들이 급여를 반납하며 회사 정상화를 위해 고통을 분담했고,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단 한 명의 해고자 없이 서로를 다독이며 위기를 극복했다.

2002년 코스닥 상장 후 상장 주식의 20%를 장기 근로자에게 우리사주 제도를 실시했고, 매년 경영 성과에 따라 전 사원 인센티브 지급, 장기 근속자에 대한 근속수당 등으로 성과에 대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올해의 일하기 좋은 직장 600’에 선정됐고, 2월에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자랑스러운 중소인’에 강재우 대표가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2006년부터 매년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지역 내 영락원은 물론, 소년·소녀가장돕기, 한국 유니세프, 서울대학교병원 등에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9년엔 1억600만 원을 기부했다.

앞으로 일야는 국내 업체 뿐 아니라 모토로라, 노키아 등 해외 업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거래 다변화를 꾀하며 제품군을 다양화에 힘쓸 계획이다. 조자영기자 idjycho@i-today.co.kr

 "일등 일야 위해 밤낮으로 뛰어 … 사회공헌도 최선"
[인터뷰 ]강재우 대표·강정훈 부사장

“아버지의 뜻을 이어 일야하이텍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일야하이텍 강재우(75·사진 왼쪽) 대표에게는 믿음직한 직원이 있다. 바로 그의 큰 아들 강정훈(43) 부사장이다.

아버지의 목표, ‘일등 일야’를 위해 밤낮으로 뛰는 강 부사장의 신념과 의지가 강 대표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있다.

강 대표는 회사 경영이 힘들었던 만큼 가업 승계에 많은 고민을 했다.

“회사 경영이 어렵지 않은 대표가 어디 있겠습니까. 특히 제조업 분야는 더욱 힘들지요. 그래도 아들이 회사에 관심을 보였을 때 기특하고 대견스러웠습니다.”

미국 MBA 과정을 밟은 강 부사장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 일에 참여했다. 이듬해 회사가 코스닥 상장이 되면서 회사를 ‘일등’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중·대형 부품군에서 휴대폰 시장으로 변화를 준 것도 강 부사장의 판단력과 추진력이 한 몫을 했다.

강 부사장은 기초와 기반을 마련해 준 아버지를 통해 회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자수성가로 20여년 만에 연 200~300억 원의 매출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저는 회사에 몸담은 지 10년 밖에 안됐지만 제조업에 묘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제조업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노력한 만큼 돌려주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거짓 없이 사람을 속이지 않는 땅과 같다고 할까요. 앞으로 가야할 길이 무궁무진한 이유입니다.”

그에게 일야하이텍은 개인 기업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지는 지역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이득보다 직원과 지역 사회를 위해 베풀고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현실에 머무르지도, 안주하지도 말자는 생각이 항상 제 머릿속을 맴돕니다.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휴대폰을 다뤘기 때문에 이젠 또 다시 도전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1천억 원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