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정표의古戰과實戰投資26.
뽕나무를 손가락질하며 홰나무를 욕하라!.
兵法36計中第26計지상매괴(指桑罵槐)[손가락/가리킬지. 뽕나무상. 욕할/꾸짖을매. 홰나무괴]이니,
뽕나무를 손가락질하며 홰나무를 욕한다. 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가 진(晉)나라와 연(燕)나라에게서 공격을 받자,
사마양저(司馬穰苴)라는 장군이 전군(全軍)을 소집했는데
그러나 왕의 총신(寵臣)인 장가(莊賈)는 기한을 넘기고 도착했다.
변명을 하며 왕의 도움을 청하려는 장가를 장군은 군법으로 즉결처형(卽決處刑)하였다.
이것을 본 병사들은 두려워서 통제(統制)에 순응(順應)했다는 소문이 돌자
적국(敵國)들이 물러났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由來)된 말이다.
兵法26計지상매괴(指桑罵槐)편은 고전을 통해 역사를 배우는 님들의 향상된 발전을 위해서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의 원문(原文)을 소개해 그 해석된 이야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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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穰苴列傳, 原文(사마양저열전, 원문)
司馬穰苴者,田完之苗裔也(사마양저자,전완지묘예야) :
사마양저는 전완의 묘예이다.
齊景公時,晉伐阿甄(제경공시,진벌아견):
제나라 경공때에 진(晉)나라가 아(阿)와 견(甄)을 치고,
而燕侵河上,齊師敗績(이연침하상,제사패적) :
연나라가 하상(河上)을 침입하였는데 제나라 군대가 패전을 거듭하니
景公患之(경공환지) :
경공이 이것을 근심하였다.
晏嬰乃薦田穰苴曰(안영내천전양저왈) :
안영이 이에 전양저를 천거하여 말하기를
穰苴雖田氏庶孼(양저수전씨서얼) :
“양저는 비록 전씨의 서얼입니다만,
然其人文能附衆(연기인문능부중) :
그러나 그의 사람됨이 문(文)으로는 능히 사람들을 화합할 수 있고,
武能威敵,願君試之(무능위적,원군시지) :
무(武)로는 적에게 위세를 떨칠 수 있습니다, 원컨대 주군께서는 그를 시험해 보십시오.” 하였다
景公召穰苴,與語兵事(경공소양저,여어병사) :
경공이 양저를 부르고 더불어 병사(兵事)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는
大說之,以爲將軍(대설지,이위장군) :
크게 기뻐하여 장군을 삼았으며
將兵扞燕晉之師(장병한연진지사) :
병사를 거느리고 연나라와 진나라의 군대를 막게 하였다
穰苴曰(양저왈) :
양저가 말하기를
臣素卑賤,君擢之閭伍之中(신소비천,군탁지여오지중) :
“신은 본래 비천한데 임금님께서 여오(閭伍)중에서 뽑으시고
加之大夫之上(가지대부지상) : 대부보다 높은 자리를 더하여주시나
士卒未附,百姓不信(사졸미부,백성불신) :
사졸은 아직 따르지 않고 백성은 저를 아직 믿지 못합니다.
人微權輕,願得君之寵臣(인미권경,원득군지총신) :
사람은 미천하고 권세는 가벼우니 원컨대 주군께서 총애하시는 신하로서
國之所尊,以監軍,乃可(국지소존,이감군,내가) :
나라에서 존귀한 사람으로 감군을 삼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於是景公許之,使莊賈往(어시경공허지,사장고왕) :
이에 경공이 이를 허락하고 장고(莊賈)를 가게 했다
穰苴旣辭,與莊賈約曰(양저기사,여장가약왈) :
양저가 (경공에게) 사례한 뒤 장고와 더불어 약속하여 말하기를
旦日日中會於軍門(단일일중회어군문) :
“내일[旦日] 정오[日中]에 군문에서 모입시다.” 하였다.
穰苴先馳至軍,立表下漏待賈(양저선치지군,입표하루대가) :
양저는 먼저 빨리 군문에 도착하고는 표(表)를 세우고[立表] 물을 떨어뜨리며 장고를 기다렸다.
賈素驕貴(고소교귀) :
장고는 본래 교만하고 지체가 높았는데,
以爲將己之軍而己爲監,不甚急(이위장기지군이기위감,불심급) :
생각하기를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는 것이요 그리고 감군이 되었으므로 약속을 급하게 생각지 않았다.
親戚左右送之,留飮(친척좌우송지,류음) :
친척들과 좌우사람들이 송별하니, 장고는 머물러 술을 마셨다.
日中而賈不至,穰苴則仆表決漏入(일중이고불지,양저칙부표결루입) :
정오가 되었는데 오지 않으니 양저는 곧 표를 넘어뜨리고 그릇에서 흘리던 물을 뒤엎고는 들어가서
行軍勒兵,申明約束(행군륵병,신명약속) :
군사를 사열하였으며 명령을 밝히어 설명하고 상벌을 약속하였다.
約束旣定,夕時,莊賈乃至(약속기정,석시,장고내지) :
상벌을 약속하여 정한 후에, 밤이 되어 장고가 도착하였다.
穰苴曰(양저왈) :
양저가 말하기를
何後期爲(하후기위) :
“어찌하여 기약한 시간 뒤에 왔는가?” 하니,
賈謝曰(고사왈) :
장고가 사과하며 말하기를
不佞大夫親戚送之,故留(불녕대부친척송지,고류) :
“대부와 친척이 송별하여 주니, 그리하여 지체하였습니다.” 하였다.
穰苴曰(양저왈) : 양저가 말하기를
將受命之日則忘其家(장수명지일칙망기가) :
“장수가 임금의 명을 받들게 된 날에는 그 집안일을 잊어야 하고,
臨軍約束則忘其親(임군약속칙망기친) :
군대에 임하여 장졸과 약속 하고서는 그 친밀함을 잊어야 하며,
援枹鼓之急則忘其身(원포고지급칙망기신) :
북채를 들어 급히 북을 치면 자신을 잊어야 한다.
今敵國深侵,邦內騷動(금적국심침,방내소동) :
지금 적국이 깊이 침입하고 나라 안이 소동(騷動)하며
士卒暴露於境(사졸폭로어경) :
사졸들은 변경에서 햇볕과 밤이슬에 노출되어 있으며
君寢不安席,食不甘味(군침불안석,식불감미) :
주군께서는 자리에서 편히 주무시지 못하며 드시되 맛있음을 알지 못 하신다.
百姓之命皆懸於君,何謂相送乎(백성지명개현어군,하위상송호) :
백성의 목숨은 그대에게 달려있는데 어찌하여 서로 송별하였다’ 말하는가?” 하고는
召軍正問曰(소군정문왈) :
군정(軍正)을 불러 묻기를
軍法期而後至者云何(군법기이후지자운하) :
“군법에 기약하고서 늦게 오는 자는 어찌하라 되어있는가?” 하니
對曰(대왈) :
대답하여 말하기를
當斬(당참) :
“마땅히 베어야 합니다.” 하였다.
莊賈懼,使人馳報景公,請救(장고구,사인치보경공,청구) :
장고가 두려워 사람을 시켜 경공에게 달려가 보고하게 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旣往,未及反(기왕,미급반) :
보낸 사람이 경공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였는데
於是遂斬莊賈以徇三軍,三軍之士皆振慄(어시수참장가이순삼군,삼군지사개진율) :
이에 장고를 목 베고 삼군에 조리(條理)를 돌렸으니 삼군의 사졸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다.
久之(구지) :
한참 후에
景公遣使者持節赦賈,馳入軍中(경공견사자지절사고,치입군중) :
경공이 사자를 보내어 부절(符節)을 지니고 장고를 사면하려 군영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穰苴曰(양저왈) :
양저가 말하기를
將在軍,君令有所不受(장재군,군령유소불수) :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는 주군의 명령이라 해도 받지 않을 수 있다.” 하고는
問軍正曰(문군정왈) :
군정(軍正)에게 묻기를
軍中不馳,今使者馳,云何(군중불치,금사자치,운하) :
“군영 내에서는 달릴 수 없는데 이제 사자가 달렸으니 군법에 어떻게 되어있는가?” 하니
正曰(정왈) :
군정이 말하기를
當斬(당참) :
“마땅히 베어야 합니다.” 하였다.
使者大懼(사자대구) :
사자가 크게 두려워 하니
穰苴曰(양저왈) :
양저가 말하기를
君之使不可殺之,乃斬其僕(군지사불가살지,내참기복) :
“주군의 사자는 죽일 수 없다.”하고 그 마부를 참하였고,
車之左駙,馬之左驂,以徇三軍(차지좌부,마지좌참,이순삼군) :
수레의 좌측 부목(駙木)을 베고, 말의 좌측 곁말을 베었으며 삼군(三軍)에 조리를 돌렸다
遣使者還報,然後行(견사자환보,연후행) :
파견된 경공의 사자가 돌아가 보고한 연후에 행군하였는데
士卒次舍井竈飮食問疾醫藥,身自拊循之(사졸차사정조음식문질의약,신자부순지) :
사졸(士卒) 막사와 우물, 아궁이와 음식, 사졸의 질병을 물어 의약등을 몸소 보살피고 어루만졌으며,
悉取將軍之資糧享士卒(실취장군지자량향사졸) :
장군의 모든 양식을 취하여 사졸들을 먹였다.
身與士卒平分糧食,最比其羸弱者(신여사졸평분량식,최비기리약자) :
자신은 사졸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어 정하였고 그 중에서 가장 허약한 사졸의 분량과 똑같이 하였다.
<26-2편은 다음 주(週)에 계속>
【주(註)】
⊙사마(司馬): 군사업무를 책임지는 직위. 삼공(三公)의 하나로써
사도(司徒)·사공(司空)과 함께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는 최고 관직으로서 주로 군사방면을 담당했다.
녹봉은 4천2백석이며
원래 대장군(大將軍)과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주던 칭호였는데
후한시대(後漢時代)에 태위(太尉)로 명칭이 바뀌었다.
⊙양저(穰苴):제(齊)나라 경공(景公)때 전략가인 사마양저(司馬穰苴)를 말함.
사마병법(司馬兵法)이라는 저술이 있음.
⊙전완(田完):춘추 때 진(陳)나라 군주 진려공(陳厲公:재위 전754-700)의 공자출신으로
원래의 성씨는 진(陳)씨다. 제나라로 망명하여 성씨를 진(陳)에서 전(田)씨로 바꾸었다.
⊙묘예(苗裔):여러 대를 걸친 먼 후대(後代)의 자손(子孫).
⊙안영[晏嬰 BC? ~ 500년]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정치가. 자(字)는 평중(平仲)이다. 안자(晏子)라고도 한다.
제나라의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를 섬기면서
절약과 검소함으로 정치를 힘써 행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여오(閭伍) ①주대(周代) 촌락(村落)의 단위. ‘閭’는 25가(家), ‘伍’는 5가.
②서민(庶民)의 무리.
⊙제경공(齊景公):춘추 때 제(齊)나라의 군주로 BC598년에 즉위하여 582년에 죽었다.
재위 기간 중 백성들에 대해 요역을 줄이고 부세를 가볍게 하여 백성들의 질고(疾苦)를 덜어줬다.
이윽고 제나라의 정치는 안정되어 당진(唐晉), 초(楚)와 함께 중원의 강국이 되었다.
⊙아(阿):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양곡현(陽谷縣) 아성진(阿城鎭)으로
춘추전국시대 전 기간 동안 제(齊)나라 령(領)이다.
⊙견(甄):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견성현(鄄城縣) 서북으로 춘추 때 위(衛)나라 령이었다가
전국 때 제(齊)나라 령이 되었다.
⊙조리(條理):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①일을 하여 가는 도리(道理).
②일의 경로(經路) 또는 가닥. 두서(頭緖).
③법률(法律) 또는 계약(契約)의 내용(內容)을 결정(決定)함에 있어서 그 표준(標準)이 되며
또한 재판(裁判)의 준거(準據)가 되는 사회생활(社會生活)의 도리(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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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上記)된 자료가 도움이 되셨길 바라면서
님들의 향상된 발전과 성공투자(成功投資)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