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정표의古戰과實戰投資23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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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정표는 고전(古戰)을 통해 한문(漢文)과 역사(歷史)를 배우며

그 전략(戰略)을 실전투자(實戰投資)에 인용(引用)해 보고자하는 겸허(謙虛)한 마음이 있습니다,

한글표기는 줄거리의 앞부분에만 해두었으나 차분히 읽어 가시는

님들의 향상된 발전(發展)과 성공투자(成功投資)를 기원(祈願)하면서 이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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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라!.

兵法36計中第23計원교근공(遠交近攻)[멀원. 사귈교. 가까울근. 칠공]이니,

멀리 있는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친다는 말입니다.

지난 편에서 계속 ------->

그리하여 (BC271)소양왕(昭襄王)36년, 드디어 범저(范雎)에게 때가 왔다.

당시 秦나라에서는 昭襄王의 모후(母后)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宰相)으로서 실권(實權)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멀리 있는 나라를 공략(攻略)하여 자신의 영지(領地)인 정도(定陶)의 땅을 확장하려하자

이 사실을 안 范雎는 王稽를 통해 昭襄王을 알현(謁見)하고 이렇게 진언(進言)했다.

“대왕께서 이웃 나라인 위와 한을 지나 강국인 제를 공격하려는 것은 옳은 계책이 아닙니다.

병력을 적게 동원하면 제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많이 동원하면 진의 손실이 커집니다.

그렇다고 진은 적은 병력을 동원하고

한과 위에서 많은 병력을 동원하는 것도 적절한 방법이 아닙니다.

동맹국을 믿지 못하면서 그들의 나라를 지나 먼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건너편에 있는 중산국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긴 했으나

결국엔 조나라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산국은 지리적으로 조나라와 가깝고, 위나라와 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왕께서 제나라를 쳤다가 이기지 못하면 망신만 당합니다.

설령 이긴다 하더라도 결국 한나라와 위나라만 이익을 보게 됩니다.

그런 바에야 진나라에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또한 제나라의 '민왕'이 연나라의 악의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있는 초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 주는 '차적병(借賊兵)'이며,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주는 '재도량(齎盜糧)'의 꼴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대왕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이 상책인줄 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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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원문

形禁勢格 利從近取 害以遠閣 上火下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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形禁勢格(형금세격):지리적제한과 장애를 받을 때

利從近取(이종근치):가까이에 있는 적을 공격하여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

害以遠隔(해이원격):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해롭다.

上火下澤(상화하택):불은 위로 올라가고, 연못의 물처럼 아래로 흐르듯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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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計源:계책의 원문

此計源於《戰國策‧秦策》:이 계원[원교근공]은전국책, 진책에 나온다.

「范雎曰: 범저가 말 한다.

『王不如遠交而近攻:“왕께서 멀리 있는 적은 교제를 하고, 가까운 적은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

得寸土,則王之寸土: 한 뼘을 얻어도 곧 왕의 한 뼘의 땅이요,

得尺土,亦王之尺土也』:한 자를 얻어도 역시 왕의 한 자의 땅입니다.”라는

這是范雎說服秦王的一句名言。:범저가 진왕을 설복할 때의 일구명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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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가 뽕잎을 먹어들어 가듯이 가까운 나라부터 쳐서 점점 먼 나라까지 이른다면

천하를 얻기에 무슨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이해득실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이 아닌 줄 아옵니다.

신은 대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계책을 주장합니다.

대왕께선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십시오.

곧 먼 나라와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들을 이간시키는 동시에

가까운 나라를 쳐서 영토부터 넓혀야 합니다. "

이에 秦의 昭襄王이 묻는다.

"그럼 먼 나라와 친교하고 가까운 나라부터 치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范雎가 말하기를,

"진나라가 친교 해야 할 먼 나라는 바로 제나라와 초나라입니다.

그리고 먼저 공격해야 할 가까운 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입니다.

대왕께서 한나라와 위나라를 정복해서 손아귀에 넣기만 하면,

제나라와 초나라가 어찌 혼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 날을 계기로 昭襄王의 신임을 얻은 范雎는

객경[客卿:다른 나라에서 와서 공경(公卿)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되었다가

秦나라의 승상(丞相)자리에 앉게 되어 응후(應侯)에 封(봉)해졌으며,

그 이후 범저(范雎)는 외교(外交), 군사정책(軍事政策)을 설파하며 신임을 얻고 그의 지론(持論)인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 먼 나라와 친선을 맺어 후환을 없앤 뒤 가까운 나라부터 차례로 공격하여

천하를 통일하자는 것으로 군사외교적책략(軍事外交的策略)과

분산된 권력을 왕에게 집중하는 중앙집권적정책(中央集權的政策)을 제시하여

秦나라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끌어

훗날 진시황 영정(嬴政)이 천하통일(天下統一)을 지향하는 국시(國是)가 되었고

戰國初期의 秦은 中原의 각국에 비해 매우 낙후한 변방 제후국(諸侯國)의 하나에 불과하였지만

상앙(尙鞅)의 변법(變法)을 채용하여 나라를 부강(富强)시키는데.......<23-下편은 다음에 계속>

-님들의 成功投資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