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투자(實戰投資) 이야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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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기다렸다가 지친 적(敵)을 공격하라!

손자병법36계中 제4計 이일대로(以逸待勞) [써以 , 달아날逸 ,기다릴待 ,일할勞 ]

《삼국지(三國志)》에 유명한 BC222년 이릉전투(彛陵戰鬪)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오(吳)나라 손권(孫權)이 관우(關羽)를 죽이자,

촉(蜀)나라의 유비(劉備)는 분노를 억누를 길이 없어 제갈량(諸葛亮)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죽은 관우(關羽)의 두 아들 관흥(關興), 관색(關索) 의형제 장포(張苞)등,

여러 제장(諸將)들을 내세워 친히 70만 대군을 이끌고 오(吳)나라로 진격하였다.

촉(蜀)나라 군대는 장강(長江)의 상류에서 강의 흐름을 따라 진격하고 있는데,

형세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향하는 모양이니 그 기세가 마치 파죽지세(破竹之勢)와 같았다.

그리고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향하면서 연거푸 10여 차례의 싸움에서 이겼으며,

그 왕성한 여세를 몰아

곧바로 이릉(彛陵),효정(猇亭:지금의 호북성 의도현 북쪽)일대까지 이르렀으니,

이미 오(吳)나라의 국경을 5,6백리를 지나 깊숙히 안마당까지 들어가 버렸다.

한편 손권(孫權)은 청년장군 육손(陸遜)을 대도독(大都督)으로 하여

5만의 군대를 주고 적을 맞아 싸우라고 명령하였다.

육손(陸遜)은 병법에 깊은 지식이 있었다.

먼저 정확하게 형세를 분석한 결과, 유비(劉備)의 기세가 처음부터 왕성하였고,

또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고 있으므로

오(吳)나라 군대가 당장 반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육손(陸遜)은 전략적인 후퇴를 한 다음,

유비(劉備)의 군대를 산 속에 고립시켜 지치기를 기다리며 그 변화를 지켜보기로 결정하고

곧 이어 오(吳)나라 군대는 산악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해버렸다.

그런데 촉(蜀)나라 군대는 5, 6백리의 산악지역 전체에 군사를 배치하고 있어

통제 및 활동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로 인해 입장이 바뀌어 촉(蜀)나라가 피동적인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는 전투(戰鬪)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전투(戰鬪)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병사들은 몸은 피로하고 마음은 답답하였다.

이렇게 대치하기를 반년이 지나자 드디어 촉(蜀)나라 군대의 투지는 느슨해 져버렸다.

육손(陸遜)은 가만히 관찰해보니

촉(蜀)나라의 전선은 수 백리에 이어져 있어 머리와 꼬리가 서로 연락이 되지 않을 정도이고,

더욱이 산림에다 막사를 치고 주둔하고 있었다.

이는 병법을 아는 자에게는 절대로 금기되는 사항이었다.

이제 시간이 무르익었으므로 육손(陸遜)은 전면적인 반격을 명령하니,

촉(蜀)나라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육손(陸遜)이 당긴 한 줌의 불이 촉(蜀)나라의 7백리를 늘어선 진영을 모두 태워버렸다.

촉(蜀)나라 군대는 대혼란에 빠져, 다치고 죽는 사람들이 참혹할 정도이니,

마침내 황망히 철수를 한다.

육손(陸遜)은 소수의 병력으로 대병력을 이긴 전쟁으로

화공(火攻)을 써서 역사상 유래 없는 대승을 거둔 이릉(彛陵)의 전투(戰鬪)이며

상대방이 지치기를 기다려 편안하고 충분히 휴식한 군대로 적(敵)을 격파한다는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전술(戰術)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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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현실에서도

객관적(客觀的)인 전력(戰力)이 상대방보다 열세(劣勢)라고 포기한다면

결코 유능한 리더나 승리(勝利)하는 조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혼란하고 피곤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휴식을 한 조직으로 상대방의 그 허점을 집중적으로 공격(攻擊)한다면

얼마든지 나의 열세(劣勢)를 극복(克復)하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님들의 成功投資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