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론(論)?

'

1. 새 vs 인간?

 

최근 팍스넷에서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진행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

새와 인간의 수익률 대결을 통해 효율적 시장 가설을 시험해본다라는 취지인데, 결과는 분명합니다.

인간은 새보다 평균 수익률이 떨어질 것입니다.다른 조건이 같다면 인간들은 빈번한 매매로 스스로 수익률을 깎아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 게시판의 지나간 글들을 돌아보며 여전히 많은 개투들이 '고수'에 대한 오해와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제 자신에 대한 오해부터 풀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고수는 아닙니다. 

그 이유는,

 

1) 저는 시세가 어찌될지 모릅니다.

2) 앵무새와 단기적인 수익률 게임을 벌이라고 하면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에서 저는 스스로를 고수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만일 또 한번의 10년이라는 기간을 준다면 돈을 왕창 벌어서 떠날 자신이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궤변일까요?

 

앵무새를 이기기 위해서는 시장 초과 수익률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시장 수익률을 목표로 합니다.

시장을 이기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반복해왔던 한 가지 대전제를 다시 한번 음미해보면,

 

수익과 손실은 시장이 내주는 것

 

입니다.

 

시장은 주식을 보유한 주체가 앵무새인지 인간인지 상관 안 합니다. 누가 주식을 보유했든 주가가 오르면 보유자는 돈을 벌고 내리면 잃습니다. 그 뿐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시장이 움직여줘야 돈이 들어오든 나가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시장 앞에서 철저하게 무력합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자면 투자자는 돛단배와 같습니다. 그저 물살이 흐르는 대로 흘러갈 뿐, 우리가 돛단배를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단기적인 물살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여기거나 물살 자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떠벌입니다. 거대한 바다 위의 돛단배에 불과한 인생들의 야망 치고는 지나치다 하지 않을 수 없죠.

 

2. 추세 추종

 

시장을 한 걸음 떨어져 관찰해보면, 바닷물에 밀물과 썰물이 있고, 풍랑이 치는 때가 있으면 잠잠할 때가 있듯, 시장에도 조류가 있습니다.

 

조류는 한 방향으로 장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있고, 추세추종은 그 조류를 타고 그저 흘러가는 방법일 뿐입니다.

추세추종은 말 그대로 '추종'일 뿐, '창조'가 아닙니다. 추세추종은 열심히 노를 저어서 물살의 흐름을 만드는 행위가 아닙니다. 추세추종은 조류를 파악하여 방향타를 정해놓으면 조류가 바뀔 때까지 그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수영 초보자들이 하는 가장 큰 실수는 물에 뜨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으면 몸은 물에 뜨게 되어 있습니다. 몸이 물에 뜨는 건 몸이 잘나서가 아니라 부력의 성질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력 때문에 몸이 뜨는 것을 자신이 허우적대서 몸이 뜬다고 착각하고, 폭포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기어올라가려고 용을 쓰는 것이 개미들의 모습입니다.

 

물론 추세추종이 매수 후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어난 수영 선수들은 불필요한 움직임은 최대한 제한하면서 물의 성질을 이용해서 가장 빨리 나아가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수영 선수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의 하나는 물살의 저항을 최소화시키는 유선형 자세라고 합니다. 뛰어난 추세추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매매를 최대한 제한하면서 시장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수익을 냅니다. 그리고 시장의 저항을 최소화시키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 말은 시장의 움직임이 없다면 돈을 벌 수가 없고,

시장이 움직이더라도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면 돈을 까인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경우나 시장이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돈을 벌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시장 초과 수익을 얻겠다는 노력은 헛되다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인간은 앵무새를 단기적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추세추종은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이깁니다. 그래서 저는 10년이라는 기간이 주어진다면 돈을 벌 수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시장의 한 사이클이 완성되는 동안 매수 후 보유자는 가만히 있지만 추세추종자는 한번씩 방향타를 전환해줍니다.

바로 방향타를 한번씩 전환해주는 아주 단순한 행위가 모든 것을 바꾸는 것입니다.

 

제 경험 상 장기적인 조류를 파악하는 것이 단기적인 조류를 파악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과거 20년 동안 KOSPI 지수를 토대로 주봉 차트에서 주가가 12주 이동평균을 상향돌파하면 매수, 하향돌파하면 매도하는 전략을 사용했다고 하면 돈을 얼마나 벌었을까요?

 

가장 최적의 결과를 알려드리자면, 5% 손절매 원칙복리를 적용시키면 20년 동안 이런 단순한 전략으로 16배의 수익이 달성됩니다.

 

같은 전략을 레버리지 상품인 선물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그 수익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전략을 일봉 차트에 적용하면 결과가 어떨까요? 즉, 12일 이평선을 상향 돌파할 때 매수, 하향돌파할 때 매도하는 겁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수익이 약간 나기는 하되, 별로 크지가 않습니다.

자산 곡선을 살펴보면 수익이 날 때는 계속 나다가 까일 때 연속적으로 까입니다.

연속적으로 까인 구간을 살펴보면 이때 시세가 횡보했을 확률이 99%입니다.

 

그럼 이제 같은 전략을 30분봉 차트와 5분봉 차트에 적용하면?

충분히 예상하셨다시피 손실이 발생합니다. 휩쏘가 너무 잦기 때문입니다.

 

타임 프레임을 단기화시킬 수록 추세추종의 위력은 반감됩니다. 휩쏘의 빈도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추세추종에서 손실은 모두 휩쏘에서 발생합니다.

휩쏘만 없다면 주가가 이동평균선을 교차할 때 방향타를 돌려주는 전략만으로 100% 수익이 납니다.

 

단기 추세를 먹는 것은 장기 추세를 먹는 것보다 훨씬 힘듭니다.

경쟁자가 그만큼 많고,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그만큼 크며, 노이즈도 많고, 세력도 장난질을 치기 때문이죠.

그러나 장기 추세는 경쟁자도 적고, 경기의 흐름을 거의 확실히 따라가며, 노이즈는 장기간에 걸쳐 상쇄되고, 세력도 어쩌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단기 매매를 할 때는 그만큼 휩쏘를 걸러내기 위한 기교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장기 투자를 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일까요?

 

우선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투는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기 매매를 하되, 시장의 큰 조류를 거슬러 매매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상승장에서는 가능한한 숏 포지션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횡보장에서는 매매를 쉬는 것이 약입니다.

 

시장의 큰 조류 속에서 작은 구간 하나라도 확실하게 먹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조류를 거슬러 매매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승자가 됩니다.

 

혹자는 '그렇다면 큰 조류를 어떻게 파악하라는 것이냐'라고 딴지를 걸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질문까지 나오면 저는 할 말이 없겠죠? 장기 차트를 보면 조류를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그 조류에 따라 매매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죠.

 

3. 추세란?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추세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경위로 발생하는가라는 점을 살펴보려 합니다.

 

한 가지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질문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 게시판에서 저와 같이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아이디를 하나만 골라서 그 글들의 시기적인 분포를 조사해보면 어떤 특징이 나타날까요?

 

미녀53의 과거 글을 조사해보면 그 글들의 시간 간격이라던가, 글의 길이의 주기적인 변화라던가 하는 어떤 패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석을 주가 차트에 대해서 행할 때 이를 '기술적 분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누군가가 이 게시판에 '미녀53의 글에는 이러이러한 패턴이 있다. 따라서 내일 10시 반에 이 게시판에 글이 올라올 것이다!'라고 쓴 것을 제가 읽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괜히 반발 심리가 생겨서 글을 안 써버릴 수도 있겠죠.

 

실제로 제가 글을 쓰는 주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비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시장 메이저들이 큰 물량을 한번씩 쏴줄 대마다 주가는 펑펑 오르거나 내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확히 얼마간의 주기로 매번 얼마만큼의 금액으로 쏘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미녀53이 쓴 글들이 시기적으로 서로 뭉쳐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메이저들이 한 방향으로 주문을 쏘는 것도 시기적으로 뭉쳐 있다는 정도죠. 바로 그걸 추세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미녀53이 글을 쓰는 날에는 돈을 100원 벌고 안 쓰는 날에는 돈을 100원 잃는 게임이 있다고 해볼까요?

 

현재 많은 개투들이 하는 게임의 방식은 과거 미녀53의 글 패턴을 분석하여 정확히 어떤 날 어느 시각에 글을 쓸 것인가를 예측해서 그 날에만 베팅을 하려고 하는 겁니다. 어리석은 방식이죠.

 

근데 어떤 현명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미녀53이 글을 쓰는데는 관성이 있다. 그러니까 한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불규칙적인 주기로 계속 글을 쓰는 경향이 있어. 그러니까 정확히 언제 쓰는지를 예측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글을 몇 편 쓰기 시작하면 계속 쓰는 것에 베팅하자. 물론 안 쓰는 날에는 돈을 잃겠지만 전체적으로  길게 보면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런 게임을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뭘까요? 아마도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 2~3일 동안 글을 안 쓰는 일이 발생해서 손실이 생길 때일 겁니다. 여기서 부화뇌동하는 사람은 '이제 미녀53은 게시판을 떠났어'라고 거꾸로 베팅을 시작하죠. 인내심이 부족한 겁니다.

 

4. 트레이딩은 심법
 

많은 고수들이 트레이딩을 심법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실제로 시장의 원리 자체는 그다지 복잡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략을 실제로 시행하려고 하면 쉽지가 않습니다.

 

왜 쉽지가 않을까요? 단기적인 손실을 감당해낼 만큼 심지가 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인 손실 앞에서 애초의 원칙을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수익과 손실에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틀린가요?

 

전략이 복잡하다고, 아는 것이 많다고 돈을 더 많이 벌 것 같습니까? 지식과 투자성과는 별로 비례하지 않습니다. 물론 많이 아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그러한 지식이 지혜로 승격되기 전에는 트레이딩에 도움이 안되는 법입니다.

 

시장을 너무 선명하게 보려고 하지 마세요. 시장은 원래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차트에 지표를 100가지 띄워놓고 너무 용쓰지 마세요. 시장은 그렇게 복잡한 넘도 아니거니와 그저 좀 변덕스러울 뿐입니다.

 

제 인생 경험을 통해 보면 용을 써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더군여. 용을 써서 되는 건 시험 성적입니다. 머리에 더 많은 지식을 쑤셔 넣을 수록 시험 성적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용을 쓰면 됩니다. 그런데 용을 써서 안되는게 바로 사랑과 주식입니다.

 

이 두 분야의 본질적인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본질적인 차이는 바로 통제 가능성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해봤자 안달만 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다루는 방식은 초점을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관계를 짤라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할 때만 관계를 지속합니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대상이 나를 좌지우지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시장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느껴질 때는 대개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시장을 너무 잘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시장은 원래 풀어놓고 키우는 겁니다.

 

5. 결론?

 

어찌 쓰다보니 오늘은 글이 중구난방 격이 되어버렸네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더라? ㅎㅎ 나이를 먹다 보니 머리도 점차 녹스는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핵심만 캐취하세요... 제가 쓴 글에는 언제나 한 가지 메시지 밖에는 녹아 있지 않습니다. 그 한 가지 메시지 속에 돈 버는 핵심 비결이 들어 있답니다.

 

그리고 고수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고수도 앵무새를 이기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수도 때로 앵무새를 이깁니다.

 

고수와 하수의 진정한 차이는...

이상하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고수의 계좌는 아주 풍성한데, 하수의 계좌는 깡통이라는 거죠.

어쩌면 고수는 10번의 매매 중 3번만 수익을 내었을 수 있고, 하수는 10번 중 9번 수익을 냈을 수도 있는데,

이상하죠? 고수의 계좌는 불어나 있고, 하수의 계좌는 쪼그라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