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정표의 도(道)와 돈(錢)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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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로 가는 선문답.           -舒州投子山大同禪師.[서주투자산대동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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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問僧。

대사가 어떤 선승에게 물었다.

久嚮疏山薑頭莫便是否。

"소산의 생강을 오랫동안 누린 것은 이것이 아닌가?"

無對

선승이 대답이 없었다.

僧問。抱璞投師請師雕琢。

선승이 물었다."박옥(璞玉)을 안고 스님께 귀의하오니, 스님께서 잘 새겨 주십시오."

師曰。不為棟梁材。

○○ "기둥이나 대들보감이 못 된다."

曰恁麼即卞和無出身處也。

○"그렇다면 변화가 몸 나갈 길이 없겠습니다."

師曰。擔帶即伶俜辛苦。

○○ "메고 다니려면 절룩거리면서 고생하겠다."

曰。不擔帶時如何。

○ "메고 다니지 않을 때엔 어떠합니까?"

師曰。不教汝抱璞投師更請雕琢。

○○ "그대처럼 '박옥을 안고 스님께 귀의하오니, 새겨 주십시오.' 라고 하지 않는다."

<傳燈錄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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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대답이 없었다 :

法眼代云。嚮重和尚日久

법안이 대신 말하기를 "화상과 거듭 누린 지 오래입니다." 하였다. (원주)

*변화(卞和)의 박옥(璞玉)

변화(卞和)는 중국 주대(周代) 초(楚)나라 사람으로 변읍출신의 화씨(和氏)를 말하고,

박옥은 옥의 원석을 뜻 한다

한비자(韓非子)의 화씨편(和氏編)에 따르면,

화씨는 형산(荊山)에서 박옥을 얻어 초나라 왕에게 바쳤다

왕이 감정인에게 감정을 시켜 본 결과 보통 돌이라고 하니,

화가 난 왕은 기만한자라고 하여 화씨의 왼쪽다리를 잘랐다

화씨는 다음에 즉위한 무왕(武王)에게도 전과 같이 박옥을 바쳤으나

역시 돌로 감정되어 오른쪽 다리마져 잘렸다

그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에서 박옥을 안고 사흘밤낮을 올라가 마침내 피눈물을 흘렸다

이 사실을 들은 문왕이 이유를 묻자.

화씨는 자신의 충의를 인정받지 못해 슬프다고 말하길래,

전문가를 시켜 박옥을 갈아보니 보옥(寶玉)이었다

그리하여 왕은 이 옥을 "화씨의 옥"이라 명명했고 세상에서 존귀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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