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주식시장, 은행, 선물 옵션, 튤립투기

 

참고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lnyun&logNo=10021264415

            http://ideas0419.com/121

 

 

 

 네덜란드 상인은 동인도 물산을 리스본에서 발트해 상품과의 교환으로 획득하고 있었는데, 에스파냐의 압력으로 물러나게 되자, 동인도와의 직접무역의 기운이 높아져 먼저 1594년 암스테르담에 원국(遠國)회사가 설립되었으며, 그 후 동종의 회사 설립과 합병과정을 거쳐 1600년 암스테르담에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고, 연달아 홀란트 등에 약 10개의 동인도 기업회사가 난립했다. 이 때문에 각 기업간의 불이익이 초래되었고, 에스파냐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통합이 필요하게 되어 의회의 요구에 따라 동인도 무역의 여러 회사는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통합되었다.

 

암스테르담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조선소 (1750)16세기에는 향료무역을 경영한 포르투갈인이 몰루카 제도를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16세기 말 네덜란드 상인이 자와 섬의 반탐에 상관(商館)을 열고 개척의 기초를 이룩했다. 1600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자 이에 자극받은 네덜란드 정부는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동양무역의 독점권을 주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총독정청(總督政廳)을 두어 포르투갈, 영국 세력을 쫓아내고, 17세기에는 동양무역에 우월적 지위를 확립하여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회사로 성장하였다.

 

일본 무역을 사실상 독점하여 당시 국제 결제 수단이었던 은화의 수입원을 마련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동양 국가들 간의 국제 무역 또한 장악하였다.

점령지역에서는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여 많은 수탈을 행했다. 자와(자바)의 토후(土侯)를 지배하고,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을 값싼 월급으로 고용했으며,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상품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남방의 향료, 커피, 쪽(藍), 설탕의 획득에는 원주민의 봉건적인 공납(貢納)이나 약탈이라고 보는게 정확할 매상(買上)을 강요하였고, 가장 중요한 정향(丁香), 육두구(肉荳蔲)는 생산지를 한정시켜 노예재배제(奴隸栽培制)를 실시하였다.

 

인도의 네덜란드 및 기타 유럽인들의 정착지회사의 번영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세계적 지위의 상징이었으나, 17세기 후반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대립에서 점차 인도를 거점으로 하는 영국 세력에게 압도(壓倒)되어 1799년 동인도회사는 해산, 네덜란드 정부의 직접 지배를 받게 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 때, 자와는 영국에게 점령되어 래플즈에 의해 식민정책(植民政策)의 대개혁이 단행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후 다시 네덜란드의 통치가 시작되어 강제재배제(强制栽培制)가 시행되었다. 즉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네덜란드의 번영과 경제적인 회복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뉴기니, 발리, 보르네오, 수마트라 등이 네덜란드의 직접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 말부터 원주민의 자각이 높아져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가, 전후 원주민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