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신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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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으면 뒷동산 양지쪽!

 

   시린 바람이 따사로운 햇볕앞에 부끄러워 고개 숙이듯...

   눈을 뜨면 불빛에 반사되어 커다란 장애물이듯...

시야를 가리는 그녀의 탄력있는 가슴에 머리를 묻고 하루를 마감한다.

내일의 끝은 오늘 같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쉽사리 눈이 감기지 않는다.


   나는 김사장을 버렸다. 그녀가 나를 버렸듯이 말이다. 감미로운 음악과 황홀한 조명아래서 그녀와 손을 맞잡고 미래를 설계할 때는 혹시나 하면서도 벅찬 감격과 끓어오르는 희열감으로 그녀 앞에 무릎이라도 끓고 싶었다.


“정말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애들처럼 자꾸 그러지마. 우린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성인이잖아.”

   두 번째 듣는 소리다. 첫 번째는 그녀를 버렸을 때,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니 그녀가 나를 버렸을 때이리라. 그때까지도 나는 성인이 아니었기에...

“책임이야기는 하지 말자구. 난 아직까지 내가 한 일에 책임지지 않은 적은 없으니까”

“그래. 우리 내일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건배하는 이 잔 속에 지난날의 찌꺼기는 모두 섞어 마시자구. 하하하.”

   그날 우리는 몸과 마음을 모두 섞었다. 술잔 속에 용해되는 지난날의 찌꺼기가 정말로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난 김사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전자공학을 공부한 것은 그녀의 수학성적이 좋아서였고, 작은 회사를 차려서 통신장비를 제조.판매한다고 했을 때는 내일처럼 기뻐했다.

“이제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오빠 마저 그러면 난 누구한테 기대라구 그래.”

“하지만 내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너같은 동생을 두기엔 난 이제 역부족이야.”

“쳇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해.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내가 많이 양보해서 된거잖아.”


   말이 가정교사지 난 별로 가르칠게 없었다. 오히려 수학은 미정이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적어도 제도권하의 수험준비를 위해서는 그녀는 선생이 필요하지 않았다. 딸을 수재로 둔 부모였지만 혹시나 잘못될까 염려되었는지 나라는 아르바이트 강사를 딸에게 붙여주고서야 마음을 놓는 그들이었다.

"우리애가 공부는 잘하지만 그래도 앞일은 모르는거잖아요. 박선생이 조금만 도와주면 내가 마음을 놓을 것 같애요.“

“반에서 성적이 어떻게 되나요?”

“호호! 전교 일등을 놓친적이 없어요.”

   난 일등과 오등사이를 오락 가락하다 배짱지원으로 운좋게 S대 법대에 들어갔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간신히 턱걸이한게 분명했다. 개강후 지도교수가 한말에서 알 수 있었다.

 

‘소신과 배짱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적어도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하지 않겠어요? 그런 면에서 여기 강의실에 앉아있는 여러분에게 배분적평등에 대한 강의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군요.’

 

“네에.. 그런데 구태여 개별과외를 시키실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좀 뭐하지만 전 보험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보험이 어느 정도 해소해 주잖아요. 그러나 오해는 마세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미정이 한텐 선생님 같은 경험자의 지도가 꼭 필요하니까요.”

 

   적당히 살이 오르고 물질이 내면의 여유까지 풍길 수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몇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미정이를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으나, 일주일에 두 번 수고(?)에 보상받는 풍요로움은 나를 쓸데없는 사고의 미로에서 쉽게 해방시켜 주었다.

“나이도 별로 차이 안나는데 선생님은 그렇고 오빠라고 불러라.”

“선생님을 오빠라구요?”

“니 실력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데 갈 것 같으니 난 그저 보험..아니 보디가드노릇에 충실할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디가드라니..”

 

   해맑은 눈동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섞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응.. 그러니까 너를 안전하게 합격시키는 일을 한다 이거지, 내뜻은.”

“선생님도 참...,그럼 엄마 안보는데서만 오빠라고 할게요. 엄마가 알면 혼나거든요.”

   일년여의 기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미정이는 굴러온 복덩어리였다. 나는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부모님을 괴롭히지 않아도 되었고, 웬만큼 잘사는 부모를 둔 곱상한 그녀와의 엉큼한 미래까지 상상하면서 고시공부는 겉만 ?C고 있었다.